[문학신간]'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 입력 2000년 8월 11일 18시 41분


확실히, 하루키는 변했다. 1인칭 서사의 문체가 3인칭 시점으로 바뀌었다는 외면적 변화보다, 개체는 결국 공동체의 광장과 연결되어 있다는,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의 확대가 두드러진다. 존재의 비의와 세계의 불확실성에 대한 감각적 접근이었던 그의 글쓰기는, 이제 공동사회적 책무를 느끼기 시작했다.

하루키의 변모는 옴진리교의 독극물 사건을 다각적으로 취재한 논픽션 ‘언더그라운드’를 국어대사전 두께로 펴낼 때부터 예견되었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너무 뜻밖인데. 다른 사람도 아닌하루키가?’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하루키는 현실의 직접적 사건들로부터 멀리떨어진, 비현실의 영역에 거주하는 주민처럼 보였다.

여섯 편의 단편이 들어있는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는 하루키의 다른 단편들처럼 다음 장편소설을 위한 에스키스로 보인다. 하루키는 그것들을 쓰기 전에 5가지 원칙을 세웠는데, 1995년 2월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며, 3인칭으로 쓰고, 80매 분량을넘지 않으며, 여러 유형의 인물을 등장시키고, 고베의 지진을 테마로 하되 지진 자체를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과연 이 책의 주인공들은 오디오 세일즈맨이거나 신용금고, 출판사, 편의점 직원이고 단편소설 작가이거나 의사이며 모두 3인칭으로 쓰여져 있다. 그래서 연작소설로 읽히기도 하며, 고베의 지진은 등장인물들의 모든 배후 세력이다.

고베 근교에는 친척도 살지 않지만 닷새동안 텔레비젼 앞에서 꼼짝않고 지진 방송을 보던 아내가 훌쩍 가방을 들고 떠나며 이혼을 요구하거나(쿠시로에 내린 UFO), 해변에서 모닥불을피우며 냉장고 속에 갇혀 죽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남자는 자신의 가족이 고베에 살고 있다고 고백한다(다리미가 있는 풍경). 개에게 물어 뜯겨 귓불이 없다는, 한 번도 본적 없는 아버지의 뒤를 미행하다가 밤의 야구장에서 혼자 춤을 추는 남자의 어머니는, 매일 15kg의 생필품을배낭에 메고 고베로 걸어가 지진피해자에게 전해주고 있고(신의 아이들은 춤춘다) 자신을 버린 남자가 살고 있는 고베에 늘 지진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원했던 병리전문의는 태국의 점장이에게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에 대해 듣는다(태국에서 일어난 일) 고베에 이어 일어날 예정이었던 도쿄의 지진을, 거대한 개구리가 땅속의 지렁이와 싸워 예방하고(개구리군, 도쿄를 구하다) 이혼한 후 딸과 함께 살고 있는, 대학시절부터 사랑했던 여자와 첫 섹스를 하는 순간, 어린 딸이 일어나 꿈속에 지진 아저씨가 나타났다고 말한다(벌꿀 파이).

이렇게 이 책의 배후에 존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1995년 2월에 일어난 고베의 지진이지만, 단단한 현실을 뒤흔든 어떤 불가사의한 힘의 영향력으로부터 작가의 개체적 삶도 결코 벗어나 있지 않다는 내면적 자각이 들어 있다. ‘그리고 문득 자신이 굳게 딛고 서 있는 대지의 밑바닥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거기에는 깊은 어둠의 불길한 울림이 있었으며, (중략) 지진의 진원지가 있었다’(신의 아이들은모두 춤춘다).

이제 하루키 문학은 삶의 따뜻함에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황량한 존재의 들판을 거쳐온 작가이기 때문에 향후 행보에 더 주목하게 되는데, 아마도 이 책은 그 초벌 그림이 될 것이다.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 무라카미 하루키/ 김유곤 옮김/ 문학사상사▼

하재봉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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