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생 어학연수]준비없이 떠나면 소득없이 귀국

  • 입력 2000년 6월 28일 18시 52분


“3년간 배운 영어를 미국에서 빨리 써봤으면 좋겠어요. 너무 신날 것 같아요.”

조민수(趙旻銹·12·부산 강남초등 6년)군은 가슴이 설렌다. 여름방학에 4주간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날 예정이기 때문.

“영어가 하루 아침에 늘겠어요. 미국 문화를 체험하고 영어에 대한 자신감만 갖고 돌아오면 충분해요.” 민수 어머니 조영순(趙英順·37)씨의 말이다.

조씨는 아들을 연수 보내려고 치밀한 준비를 했다. 직접 영어 참고서를 뒤적여 배우면서 민수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대신 월 15만원 가량인 영어 학원비로 적금을 들고 돈을 보태 해외 연수비 335만원을 마련했다. 민수도 해외 연수에 대비해 열심히 공부했다.

역시 미국 연수를 떠날 이지연양(12·한국켄트외국인학교 5년)은 한국의 역사와 가족 소개 등을 깨알같이 적은 쪽지를 틈나는 대로 꺼내 영어로 중얼거린다. 자신이 머물 덴버시에 대해서도 공부를 마쳤다.

여름방학에 해외 어학연수를 가거나 부모가 외국으로 부임해 1∼3년간 외국으로 나가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별 다른 준비없이 떠나는 연수나 유학은 실패하기 마련. 연수를 하는 철저한 목표 의식과 동기가 있어야 연수의 성과를 맛볼 수 있다.

외국 가정에서 머무르는 홈스테이 연수를 알선하는 C·H·I한국지사 김덕환(金德煥)사장은 “아이들이 한달만에 귀가 뚫려 돌아올 것이라는 환상부터 버려야 한다”며 “외국 문화를 체험하면서 언어를 자연스럽게 익히는 것이 홈스테이의 취지”라고 말했다.

우선 외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외국 가정은 대부분 검소하게 식사를 한다. 우리처럼 손님이 왔다고 요란을 떨지도 않는다. 이를 음식 대접이 소홀하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식습관 등 우리와 판이하게 다른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스트레스만 쌓일 뿐이다. 마음의 벽을 쌓는 학생은 성공적인 연수를 기대할 수 없다.

외국에 나가면 언어장벽이 가장 큰 고충이다. 이 때문에 외국어를 사전에 철저히 익히는 것이 필수적이다. 국내에서 열심히 외국어를 공부할수록 연수 효과는 높아진다.

비교적 철저히 준비를 했더라도 외국에서 말문이 막혀 당황하는 일이 많다. 이 때 필요한 것이 두둑한 배짱. 말이 서툴면 몸짓 발짓으로라도 의사소통을 해보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부모의 품 안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한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자녀에게 휴대전화를 들려 보내 수시로 전화를 거는 학부모도 의외로 많다.

외국에서 몇년간 머물 학생들은 외국어를 철저히 익히고 생소한 수업 방식에 적응할 각오를 다져야 한다.

“처음에는 애들이 말이 안통한다고 끼어주질 않았어요. 다행히 제가 축구 농구를 잘 해서 운동을 함께 하니 친해지더군요. ”

허준석(許準碩·16·베트남 호치민 국제고교 1학년)군은 외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상 회화는 가능해도 외국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이해하기 힘들어 주눅이 들면 학교 생활에 쉽게 염증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영국에서 4년간 살다 귀국한 김현정(金泫廷·18·대원외고 3년)양은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창의성을 강조하는 수업 방식에 적응하는 게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 학생들이 현지에서 제대로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귀국후 진학문제를 체계적으로 관리해주는 업체 10여곳이 성업 중이다.

세한아카데미 김철영(金喆永)원장은 “장기간 외국에서 학교를 다닐 학생은 외국에서 계속 공부할 것인지 아니면 귀국해 국내 학교에 진학할 것인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면서 “귀국하려면 미리 국내 교과과정에 맞춰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녀가 현지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면 외국 학생을 위한 적응 프로그램을 찾아보고 집단 따돌림 등 상황이 심각한 경우 학교를 바꾸거나 귀국도 고려하는게 현명하다.

<이인철기자>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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