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식물은 왜 바흐를 좋아할까?

  • 입력 2000년 4월 28일 19시 34분


“온실에서 자라는 화초는 주인이 매일 쓰다듬으면서 잘 자라라고 소곤대면 정말로 때 이른 꽃을 피운다. 그러나 과연 주인의 보살핌에 은혜를 갚기 위해 꽃을 피운 것일까. 사실 나무에게 있어 사람의 손길은 무척 큰 스트레스다. 그래서 빨리 꽃을 피우고 죽기로 작심한 것이다.”

이건 일종의 자살 행위다. 식물 연구에 거의 모든 삶을 바치고 있는 저자는 식물의 ‘자살 행위’를 보며 “꽃에 대한 사랑은 고대 네안데르탈인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아직까지 꽃에 대한 인류의 사랑은 누군가 말했듯이 짝사랑일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을 나타낸다.

‘신갈나무 투쟁기’(지성사)에서 “식물도 인간들 못지 않은 고달픈 삶을 산다”는 식물쪽의 항변을 실감나게 전해 줬던 저자가 이번에는 모성애, 사춘기, 욕망, 소리, 개척, 약탈 등 36가지 주제로 식물들의 내밀한 사생활을 보여 준다.

식물들이야말로 정말 섬세한 감정을 가지고 있기에 더 정이 간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클래식 음악과 록 음악을 식물에게 지속적으로 들려 주면 흥미로운 반응을 읽어 낼 수 있다. 옥수수 호박 백일홍 금잔화 등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클래식 방송을 틀어 준 쪽으로 줄기가 이동해 자라는 현상이 나타난다.”

소리, 빛, 기상 등 주변 환경에 민감한 식물들은 사람들처럼 유아기와 사춘기를 거쳐 화려한 꽃과 향기로 번식을 꿈꾼다. 보잘것없는 인간들이 자기들의 번식을 위한 유혹의 도구로 이용하는 꽃은 바로 그들의 유혹 장치다.

번식기가 지나면 시들고 마는 꽃과 달리 긴 세월을 한 곳에 버티고 서서 풍상을 겪어내는 나무는 자신의 몸에 그곳의 역사를 고스란히 기록한다. 나무는 인간들에게 종이의 원료를 제공할 뿐 아니라 ‘기록의 문화’까지도 가르쳐 준 셈이다. 255쪽 8000원

<김형찬기자> khc@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