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수 개인전]작가「혼」담긴 누드소묘등 선봬

  • 입력 1999년 5월 17일 19시 28분


『소묘 속에 저 자신의 기(氣)를 너무 많이 불어 넣으려다 제가 오히려 죽을 뻔 했습니다. 작업도중 현기증이 나서 주저앉아 한참을 일어나지 못한 적도 여러 번입니다.』

노(老) 대가의 창작열은 아직도 너무나 뜨겁다. 추상과 구상표현을 한 화면에 조화시킨 ‘하모니즘 회화’로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김흥수(80)화백. 그가 21일부터 6월6일까지 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연다.

지난해부터 올해초까지 새로 그린 소묘 30여점이 주조.

“지난해 말 그려놓은 소묘를 가만히 보니 기(氣)가 빠져있는 것 같았어요. 다 때려치우고 새로 그렸습니다.”

그가 말하는 기(氣)란 작품 속에 살아 움직이는 작가의 혼과 느낌. 그림 속에 기가 부족한 것을 느낀 뒤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화폭 앞에서 정신을 집중했다. 맹렬한 집중 끝에 어느 순간 느낌이 올 때 단 한번의 손길로 소묘를 완성해 나갔다. 종이 위에 수많은 선을 그을 수 있지만 그 중 자신의 의도를 극명하게 나타내는 단 하나의 ‘결정적인 선’을 찾으려 했다. 작업을 마친 올해 초 과로로 정신이 혼미해지고 음식을 제대로 넘기지 못해 병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가 주로 그린 것은 여인의 누드.

“누드의 포즈가 얼마나 다양한가를 보여주려 했습니다.”

그는 그림의 밑바탕인 소묘에 물감을 칠하는 것을 소묘에 옷을 입히는 것에 비유한다. 이번 전시에서 물감이라는 ‘옷’을 걷어낸 그림의 알맹이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싶었단다.

미술평론가 신항섭은 이번 소묘에 대해 “단순 간결하면서도 힘이 넘친다”면서 “사실적으로 그리되 작가가 인체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가미한 점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전시회에는 ‘나부’ 등 73년 이후 그린 하모니즘 회화작품 20여점도 전시된다. 현실에서 보이지 않는 무의식의 세계를 어두운 색으로 표현한 추상(음·陰)과 눈에 보이는 사물을 밝은 색으로 그린 구상(양·陽)을 한 화면에 조화시킨 그림들이다.

이같은 독특한 작품들로 그는 93년 러시아 푸쉬킨 미술관에서 생존작가로는 샤갈 이후 두번째로 전시회를 갖는 등 전세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02―3216―1020

〈이원홍기자〉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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