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진단]공연단체『무대를 찾아서…』떠돌이신세

  • 입력 1999년 5월 10일 19시 39분


《공연장이 모자란다. 최근 서울 문예회관 예술의전당 등 국공립 공연장들이 자체 기획공연을 늘리면서 민간 공연단체들이 극장을 빌리기 힘들어졌다. “우리가 직접 돈을 벌겠다”는 공영(公營)공연장의 움직임에 민간이 주도하는 공연예술이 위축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세계무용연맹 한국본부는 요즘 충격에 휩싸여 있다. 가을에 ‘패션과 디지털,무용의 만남’이란 공연을 엿새 동안 할 계획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서울 문예회관대극장(종로구 동숭동·7백10석)에 대관신청을 했으나 이틀밖에 극장을 빌리지 못한 것.

이 연맹 관계자는 “무대와 객석크기, 조명 및 음향시설, 대관료 등을 놓고 볼 때 이 극장이 최적”이라며 “참가자 수를 대폭 줄이자니 탈락자의 항의를 받을 것이 뻔하고, 행사의 의의도 살리지 못할 판”이라고 한숨을 쉬고 있다.

▼ 돈벌기에 나선 공연장 ▼

이같은 ‘날벼락’이 세계무용연맹의 일만은 아니다. 지난해 하반기 이 극장의 대관 경쟁률은 3.3대 1. 올해는 7대 1로 치솟았다.

이유가 뭘까? 문예회관을 운영하는 문예진흥원이 그동안 대관만 하다가 이제는 직접 ‘기획’에 나서고 이 기획물을 공연하는 단체에 대관의 우선권을 주기로 방침을 바꿨기 때문. 따라서 아무리 훌륭한 공연계획이 있어도 문예회관의 기획의도에 맞지 않는 한 이 무대에 서기 힘들게 된 것.

5월이후 문예회관은 자체 기획공연 두편을 한달 이상씩 공연한다. 서울연극제 47일, 국제무용제 27일 등 장기공연이 잡혔고 한달동안 보수한다. 결국 올하반기에 민간 공연단체가 사용할 날짜는 두달에 불과한 셈. 지난해 4개월반과 비교하면 절반이하다.

문화관광부에 따르면 지난해말 현재 3백석 이상 중대형 공연장 숫자는 전국에 1백47개. 서울에는 27개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학교시설을 제외하면 실제 중대형 공연장은 예술의 전당(오페라극장 토월극장 음악당 콘서트홀) 세종문화회관대소강당 국립극장대소극장 리틀엔젤스예술회관 호암아트홀 연강홀 동숭아트센터동숭홀 등 7곳에 불과하다.

적절한 음향 조명 및 무대시설이 필요한 음악 무용공연은 물론 대규모의 연극 공연은 이들 공연장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대규모 공연의 약 43%가 서울에서 열리므로 서울의 공연장 부족은 상상을 초월한다(98년 기준).

이 가운데 시설과 교통이 좋아 인지도가 높은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국립극장은 모두 문화관광부와 서울시 산하의 공공 공연장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는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이들 공공 공연장에 ‘비용을 줄이고 이윤을 남기라’는 지침을 내렸다. 결국 공연장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일제히 기획공연의 비중을 높이게 된 것. 대여료만으로는 수익을 높이기 힘들므로 표도 팔고 기업협찬도 받으려는 의도다.

▼ 기획공연의 명암 ▼

과연 기획공연은 ‘이윤’을 만들어줄까. 예술의전당 음악당의 경우 작년 80회였던 기획공연이 올해 1백50회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 공연장을 대여하면 기본대관료와 부대시설비를 합쳐 많아야 하루 3백만원이다. 반면 지난해 7월 자체 기획한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는 매표수입만 7백만원을 올렸다. 예술의전당이 기획공연을 시도하는 이유로서 충분하다.

그러나 적자도 본다. 지난해 12월의 코믹콘서트 ‘못말리는 음악회’는 1백50만원의 적자를 봤다. 완성도와 마케팅이 따르지 않으면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기획공연으로 이윤만 추구할 경우 악극 등 대중에 영합하는 레퍼토리의 비중만 높아질 우려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국립극장이나 세종문화회관은 지금까지 산하단체(각 7, 9개)공연과 대관만 해왔다. 그러나 두 극장이 6, 7월중 재단법인으로 탈바꿈하면서 독립채산제를 적용하면 기획공연의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다. 문예회관이나 예술의전당과 마찬가지로 대관 경쟁이 ‘바늘구멍’으로 바뀔 공산이다.

이런 와중에 민간 공연장들은 거꾸로 문을 닫고 있어 공연장 부족은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민간단체인 옥랑문화재단의 동숭홀은 치솟는 유지관리비를 감당할 수 없어 6월부터 공연대관을 하지않고 영화관으로 바뀐다. 민간 공연장에 대한 정부지원은 없고 문예진흥기금 징수 등 부담만 준 탓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 대안은 없나 ▼

공연장이 경영을 합리화해 시민들의 세금을 낭비하지 않는 일도 중요하다. 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해 문화 향수층을 넓혀 나가려는 노력도 환영할만하다. 그러나 “공연장을 민간단체에 대관하는 것 역시 공연장의 사회적 기능”이라는 전문가들의 주장도 옳다.

홍승찬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는 “공영극장마다 사회가 요구하는 목표를 달리해 그 결과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술의전당〓고급문화 확산’ ‘문예회관〓실비 민간예술계 지원’처럼 역할을 분명히 나눠주어야 한다는 것.

무용평론가 장광렬은 “민간이 공연장을 지으면 운영비를 지원하는 등 다양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며 문화관광부가 민간 극장을 임대해 싼 값에 공연단체에 대관하는 방법도 대안으로 제시했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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