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슬부슬, 봄비가 내리던 날.
동화작가 권정생씨(61)가 처마 밑에서, 돌이네 흰둥인지 검둥인지가 누고 간 한 덩어리 「강아지똥」을 발견했다. 강아지똥은 마침, 봄비를 맞아 흐물흐물 그 덩어리가 녹아내리며 땅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고 한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작가는 다시 그 처마밑을 지나다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강아지똥이 스며 녹아내린 바로 그 땅에서 놀랍게도, 앙증맞은 민들레꽃이 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권씨는 순간 『아, 저거다』하는 감동이 밀려왔다고 한다. 「강아지똥처럼 보잘 것없는 것도, 저렇게 자신의 온몸을 녹여 한 생명을 피워내는구나…」.
이렇게 해서 그 유명한 동화 「강아지똥」(길벗어린이)은 탄생했다. 우리 옛그림의 정취를 듬뿍 담은 정승각씨의 그림과 짝을 맞춘 이 동화는, 강아지똥에서 민들레꽃을 피워 내는 사랑의 힘을 그린 명작으로 꼽히고 있다. 길벗어린이에서 「강아지똥」에 이어, 「민들레 그림책」시리즈로 펴낸 두번째 동화 「오소리네 집 꽃밭」. 여기에서도 작가 권씨와 화가 정씨가 다시 호흡을 맞췄다.
들판에 나뒹구는 하찮은 돌멩이 하나도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 사람의 손길이 닿기 전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세상의 아름다움은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고 가까이 다가설 때만 느낄 수 있다는 나지막한 속삭임이 들려온다.
김중철씨(어린이도서연구회)는 이 동화는 무엇보다, 글과 그림이 잘 어울리고 있다고 평했다. 김씨는 『그림이 다소 거칠고 산만한데도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며 『아마도, 「꽃밭」처럼 예쁘게 그리려고 하기보다는 자연속에 피어난 그대로를 질박하게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 줄거리
밤나무가 뿌리째 뽑혀 넘어질 만큼 무서운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던 어느 봄날. 양지볕에서 꼬박꼬박 졸던 오소리아줌마가 바람에 날려 학교 옆까지 데굴데굴 굴러간다.
울타리 사이로 빼꼼히, 학교안을 들여다 보던 오소리아줌마의 탄성. 『어머나, 예뻐라!』 운동장 한쪽 꽃밭에 소담스럽게 피어 있는 봉숭아 채송화 접시꽃 나리꽃…. 오소리아줌마가 입을 앙다물며 중얼거린다. 『나도 집에 가서 예쁜 꽃밭을 만들어야지』
집에 오자마자 오소리아저씨를 다그친다. 『우리도 꽃밭을 만들어요』 『웬 꽃밭?』 『그냥 예쁜 꽃밭이오』 오소리아저씨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다 괭이를 들었다. 『영차!』
『아니, 여보! 그건 패랭이꽃이잖아요. 쪼지마세요!』 오소리아줌마는 봉오리가 맺힌 패랭이꽃을 감싸안으며 눈을 흘긴다. 오소리아저씨는 이번엔 다른쪽으로 돌아서서 괭이를 번쩍 치켜든다. 『영차!』 『에그머니! 그건 잔대꽃이잖아요. 쪼지마세요!』 오소리아저씨는 다시 비켜나서 『영차!』하고 땅을 쪼았다. 『안돼요! 그건 용담꽃이에요』
『그럼 대체 어디다 꽃밭을 만들자는 거요?』 『꽃이 안핀 데를 찾아보세요!』 오소리아저씨의 볼멘소리. 『여기도 저기도 다 꽃인데, 어디 틈난 데가 있어야지…』
말문이 막히는 오소리아줌마. 그도 그럴것이 오소리네 집 주변은 온통 꽃들로 둘러싸여 있다. 있는 그대로가 꽃밭.
『일부러 꽃밭을 만들지 않아도 이렇게 예쁜 꽃들이 지천으로 피었구려』 『그건 그래요. 이른 봄부터 진달래랑 개나리랑 늦가을 산국화까지 피고 지고 또 피니까요』
『겨울이면 하얀 눈꽃이 온 산 가득히 핀 건 잊었소?』
(권정생 지음/길벗어린이 펴냄)
〈이기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