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걷는 길]파격적 글자체 개발-제작 안상수씨

  • 입력 1997년 11월 15일 09시 12분


손으로 쓴 육필의 모양은 다 제각각이다. 그 사람이 글자를 익힌 이래의 필체, 그리고 살아온 다양한 인생역정과 사상이 은연중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컴퓨터의 대중화에 따라 다양하게 발전해온 워드프로세서의 한글 자체(字體). 그 글자 창조과정에도 범상치않은 애정과 고뇌가 담겨있다. 기존틀을 깬 파격적인 한글 자체인 「안상수체」의 제작자인 안상수(安尙秀·45)홍익대교수는 10여년간 한글자체 개발에 몰두해왔다. 『저의 인생이 프로그램화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끔씩 들기도 합니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 일을 하도록 이미 정해져있었다는 운명적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안교수가 글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홍익대 재학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학보사 기자로 신문편집에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글자야말로 가장 원초적인 디자인」이라는 생각을 품게 됐다. 졸업후인 80년대초 「마당」이라는 잡지에서 일하면서 인연은 더 깊어졌다. 수많은 광고 포스터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든 안씨. 대부분의 잡지들은 이미 나와있는 한글체를 사용했지만 개성있는 글자체를 구사하려는 그에게는 매일매일이 창조를 위해 주어진 산고(産苦)의 나날들이었다. 「마당」지가 부도나면서 안씨는 「안그라픽스」라는 개인스튜디오를 차렸고 본격적으로 한글자체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다. 이때 안씨와 8비트 구형컴퓨터의 첫만남이 이뤄지고 이후 컴퓨터는 한글 자체 개발에 없어서는 안될 도구가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글자체는 네모틀을 전제로 했습니다. 정해진 네모틀 안에서 자음과 모음의 크기와 모양을 변형시켜 안정성과 짜임새를 이뤄야 했던 것이죠. 때문에 글자체 한벌을 완성한다는 것은 1만1천1백72개의 음절을 모두 디자인한다는 것을 의미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안씨의 감각은 남달랐다. 자음과 모음 24개만 디자인해 모든 경우에 자모음을 변형하지 않고 사용하자고 생각했다. 이는 과거 디자인양식로부터 단절이자 껍질을 깨는 획기적 접근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안상수체」는 당연히 네모틀을 유지하지않고 들쭉날쭉한 글꼴이 특징. 『안상수체를 이루는 자음과 모음은 엄밀히 볼때 타자기에 쓰이는 글자의 원리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의 자음과 모음은 초음으로 쓰일 때나 종음으로 쓰일 때 등 모든 경우에 합당해야 한다는 원리죠』 안상수체에 대한 반응은 시큰둥했다. 은사 몇분이 사석에서 『이런 것도 글자냐』고 핀잔을 줄 정도였다. 오기였을까. 안씨는 이런 반응에 대해 오히려 일종의 쾌감을 느꼈다. 안씨는 「기존의 틀에 익숙한 사람들이 나의 글자체에 거부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워드프로세서 소프트웨어로 제작된 안상수체는 문화체육부의 로고로 사용되는 등의 계기를 통해 대중에게 다가가고 있다. 「과학동아」의 표지글자로 사용되면서 더욱 알려졌다. 『과학동아의 표지글자로 선정되는데에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안상수체에 대한 일반인들의 생소함과 거부감때문에 당시 출판국장이 적극적으로 이사회에서 설득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안상수체 외에 미르체 마노체 이상체 등 다양한 글꼴을 개발한 안씨. 그는 디자인의 기초자료로 필수적이라는 판단 아래 전통문양의 수집에도 집념을 보이고 있다. 〈한정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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