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나온 「名家집 내림손맛」

  • 입력 1997년 2월 17일 20시 15분


[강수진 기자] 고산 윤선도가(家)의 감떡, 고운 최치원가의 송순주…. 역사속 유명인물의 고고한 기품이 살아 숨쉬는 명가(名家). 음식에도 대갓집의 법도와 엄격함이 배어있다. 종부(宗婦)의 손끝에서 손끝으로 대물림해 내려온 명가의 음식들이 책으로 묶여 소개됐다. 「명가집 내림손맛」(고려원미디어간)이 그것. 이 책에서는 명가 19집의 독특한 음식과 이를 이어받아 지켜온 큰집 맏며느리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다산 정약용가에서 태어나 조선시대 이름을 떨친 성리학자였던 회재 이언적가로 시집온 종부 정영교씨(61·경북 경주시 강동면). 여강 이씨 집안의 음식은 회재의 영향으로 음식에서도 자연의 친화력을 중시한다. 진달래나 국화 등을 이용한 화전이 대표적인 음식. 퇴계 이황가의 종부 김태남씨(87·경북 안동시 도산면)가 물려받은 손맛은 열두가지 종류의 떡. 제상에는 항상 열두가지 떡이 오른다. 이는 검소한 생활을 강조했던 퇴계가 남긴 『기름에 튀긴 유밀과를 제사에 쓰지 말라』는 유언에서 비롯됐다. 유밀과 없는 제상이 초라해 민망했던 종부들은 유밀과 대신 떡을 푸짐하게 놓은 것. 맞편 진주고물찰편 시루떡 당귀떡 등을 일일이 쪄냈다. 고운 최치원가의 자랑거리는 술. 김성수 조병옥 등 유명인사들도 한번쯤은 들러 맛보았다. 경주 최씨가문의 가양주는 법주였지만 귀한 손님에게는 소나무순으로 만든 송순주를 대접했다. 물론 술을 빚는 일은 모두 종부의 몫이었다. 밤새도록 술독에 귀를 기울이다가 술익는 소리가 들리면 그제서야 마음을 놓았던 종부들의 정성. 효령대군댁의 종부 성기희씨(76·강원 강릉시 운정동)는 행여 물묻은 그릇으로 간장을 떠내지는 않는지 노상 지켜보던 시할머니밑에서 엄격하게 손맛을 익혔다. 오래 묵힌 진간장과 조선간장을 섞고 더덕 대추 해삼 전복 은행 등을 넣어 만든 효령대군댁의 간장은 육간장이라 불렸는데 향기좋은 재료가 다 들어간 간장이라 음식맛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고산 윤선도가(전남 해남군 해남읍)의 독창적인 음식중 하나는 감떡. 작가 정비석씨는 이를 두고 「입에 들어가자마자 녹아 향기가 은은하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명가의 음식에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음식 재료부터 좋은 것을 선별해서 사용한다. 또 조미료를 쓰지 않고 음식이 가진 재료맛을 최대한 살린다. 무엇보다도 두드러진 것은 정성이다. 명가의 음식은 하나같이 손이 많이 가는 것들이지만 음식 만드는 과정중 어느 한가지라도 소홀함 없이 지킨다는 것. 음식은 손맛이요, 손맛은 정성에서 나온다는 불변의 진리를 새삼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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