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257)

  • 입력 1996년 12월 30일 20시 20분


사랑의 경지〈4〉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젊은 남자들이 떠들썩하게 들어선다. 『어제도 마셨는데 송년회를 또 하자는 거야?』 『마지막 날인데 그냥 헤어지기는 좀 그렇잖아. 간단히 목이나 축이지 뭐』 『그래, 눈도 오는데 맥주 몇 병만 마시고 길 막히기 전에 일어나자구』 주고받는 말소리에 조용하게 가라 앉았던 실내가 갑자기 활기를 띤다. 눈이 오나? 나는 더러운 창문으로 코를 바싹 갖다 댄다. 오래 전 어느날의 추억처럼 성긴 눈발이 사선으로 날리고 있다. 한참동안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취한 내 귓가로는 비틀스의 목소리가 사라지며 저편 어딘가에서 내가 청했던 노래가 들리기 시작한다. You can dance every dance with the guy. 흥겨운 댄스 파티가 열리고 있다. 멋진 남자들이 여자에게 다가가 이렇게 속삭인다. 나와 함께 춤추시겠어요? 나도 누군가가 그렇게 말해주기를 바랐다. 나와 함께 춤추시겠어요? 라고. 그 멋진 누군가의 모습을 그려보라면 물론 현석의 모습일 것이다. 귓가에 들리는 노래는 후렴구를 크게 반복한다. Save the last dance for me, Save the last dance for me. 그렇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막 춤을 추고 싶어한다. 아니 누구나 마지막 춤상대가 되기를, 마지막 사랑이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타인 속에 마지막 춤의 대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춤 상대에게 성실한 것만이 마지막 춤을 제대로 추는 방법이다. 나는 멋진 남자와는 절대 춤추지 않을 것이다. 사랑에 대한 어떠한 헛된 꿈도 갖지 않게 만드는 남자와 행복하게 춤춘 다음 돌아와서 진정한 마지막 춤을 출 것이다. 그 아름다운 독무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나 혼자가 아니라, 나 자신과 함께. 간단히 마시고 나간다던 남자들이 술을 더 주문하는 소리가 들린다. 첫사랑과 옛 여자에 대해 떠들기 시작한 그들의 목소리는 달콤한 회환에 젖어 있다. 하긴, 이렇게 눈 오는 날 술집에서 누군들 그립지 않겠는가. 사랑은 멀리 가버린 뒤에야 가능해진다. 나는 술잔을 들어 기울인다. 상현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하지만 오고 있을 것이다. 아마 긴 터널을 빠져나오느라 이렇게 오래 걸리는 모양이다.〈끝〉 <글:은 희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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