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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3월 23일 19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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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노폴리
닐 포스트먼 지음 김균 옮김
289쪽 1만2000원 민음사
“기술발명자들은 그 기술이 장차 이익이 될지 해가 될지 판정할 수 있는 최후의 재판관은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이집트 왕 타무스가 발명가의 모범이 되는 테우스 신에게 한 발언이다. 매체생태학의 관점에서 볼 때, 기술은 의식과 사고를 형성하고 변화를 추동하며 항상 먼 훗날에서야 판단될 수 있는 미래 완료형이다.
모든 테크놀러지는 인간에게 짐이자 축복이다. 오늘날 기술애호가이자 ‘기술도착자(technophile)’들이 발설하는 하이테크와 디지털 테크놀러지 예찬론은 매우 무성하다. 가령 기술애호가들의 ‘크레도(credo·신조)’는 새로운 기술은 무조건 좋은 것이고, 또한 윤리적으로 옳다는 단순한 발상에 기초한다. 그러나 기술은 문화나 이데올로기와 무관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기술은 ‘인간이 자연에 대처하는 양식’을 드러내며 사회변동의 다이내믹스라는 입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이것은 닐 포스트먼이 이 책에서 던지는 화두이기도 하다.
인간 문화의 역사는 도구사용 문화→기술주의 문화→테크노폴리(Technopoly·기술에 의한 지배) 등 순차적으로 바뀌어왔다. 도구사용 문화에서 기술은 완전히 인간의 물적 환경 개선에 봉사하고, 기술주의 문화의 단계에서 기술은 부분적으로 문화적 전통과 가치에 도전하지만 여전히 전통적 세계관에 의해 통제된다. 테크노폴리에 접어들면 모든 형태의 문화와 생활이 기술과 기교에 종속된다. 미국의 경우, 군대 가정 교회 교육에 테일러 시스템이 적용됨으로써 테크노폴리의 시대가 열리게 됐다.
특히 모든 움직임을 진보나 발전으로 파악하려는 미국에서 발달한 테크노폴리는 테크놀러지가 신격화되고 권력을 독점하는 문화적 상황이다. 말하자면 기술은 한번 생성 도입되기만 하면 인간 통제를 벗어나고, 테크놀러지는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예정된 임무를 수행한다. 기술은 ‘줌과 동시에 빼앗기’ 때문에 모든 문화는 기술과 어떤 형태든지 협상을 벌일 수밖에 없다.
항상 승자와 패자가 공존하는 과학기술시대에 불행하게도 패자부활전은 없고, 패자 역시 승자가 배푸는 각종 마술로 자신을 위무한다. 헤럴드 이니스에 따르면, 디지털 테크놀러지와 사이버 문화의 시대에도 지식의 공유는 요원한 일이고 지식의 독점은 불가피하다. 이는 최근 디지털 테크놀러지의 발달과 사이버 공간의 확장을 둘러싼 낙관적이고 신자유적인 입장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테크노폴리’라는 징후적 문화현상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저자는 테크노폴리 현상이 상당히 미국적 환경 속에서 배양되었음에 주목하고, 이에 대한 처방으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그가 말하는 치유로서의 교육이란 역사와 전통을 재구성하고 도덕적 건강성을 회복시키는 이른바 ‘인간’ 교육을 의미한다.
‘사랑으로 무장한 저항투사론’과 같은 다소 규범적인 그의 문명비평관이 진부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도덕적 지적 나침반을 상실한 채 도구적 지식 지상주의로 치닫고 있는 한국 (교육) 현실의 테크노폴리적 국면을 읽어내는 데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다.
김 동 윤(건국대 교수·불문학·반연간지 ‘비평’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