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민속학자인 저자가 고전 요괴의 원형 파헤쳐
저주 받은 개 ‘이누가미’에서 ‘이누야사’ 탄생한 듯
‘귀멸의 칼날’에 나오는 천 요괴도 설화 속에 존재
◇일본 요괴 도감 101/잭 데이비슨 지음·강은정 옮김/320쪽·4만3000원·공명
다양한 유래와 모습을 가진 일본 요괴들. 저자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표면을 살짝 긁으면 어디서든 요괴가 튀어나온다”며 “이렇게 일본 문화의 중요한 토대를 이루는 요괴가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소설의 소재나 등장인물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사진은 천 요괴인 잇탄모멘. 공명 제공
‘귀멸의 칼날’ ‘주술회전(呪術廻戦)’ ‘센과 치히로의 모험’ ‘이누야사’ 등 일본 애니메이션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기기묘묘한 요괴들은 모두 작가가 창작한 걸까?’ ‘저 많은 요괴는 다 어디서 온 걸까’ 하는. 그런 궁금증을 가진 이가 또 있었나 보다.
일본 민속학자로 활동 중인 저자가 세계가 열광하는 일본 애니메이션과 게임 속 요괴들의 뿌리를 정리했다. 200점이 넘는 삽화와 함께 고전 요괴의 원형을 소개한다. 이를 바탕으로 현대의 일본 작가들이 어떻게 재해석하고 변형시켜 걸작을 만들었는지 유추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밤중에 잔뜩 굶긴 개를 사거리로 데리고 가라. 그 개를 말뚝에 묶어놓고 발이 닿지 않는 곳에 먹이를 놓는다. 개가 먹이를 먹기 위해 온통 난리를 칠 때 개의 머리를 잘라낸다. 그대로 사거리에 묻는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개의 머리 위를 짓밟으면 짐승의 분노가 불타오르면서 저주가 된다. 이것이 이누가미라고 불리는 저주의 개다.”(‘이누가미―초자연적인 개’에서)
‘이누(犬)’는 개, ‘가미(神)’는 신이란 뜻. 2000년대 초반 세계적으로 히트한 애니메이션 ‘이누야사(犬夜叉)’는 개와 야차(夜叉)를 합친 말이다. 일본 전국시대로 시간 이동한 현대의 중학생 히구라시 카고메가 반인반요 이누야사와 펼치는 모험을 다룬 이 작품은 2020년 기준 5000만 부가 팔렸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세계 많은 나라에서 ‘가장 인기 많은 일본 애니메이션’ 투표를 하면 대부분 상위권에 든다.
‘귀멸의 칼날’ 시리즈 중 ‘환락의 거리’ 편에 나오는 오비(帯·기모노를 입을 때 허리에 두르는 띠) 혈귀도 순수한 상상의 창작물은 아닌 것 같다. ‘어떻게 저런 요괴를 생각했을까’ 싶지만, 저자에 따르면 이미 ‘잇탄모멘(一反木綿)’이란 요괴가 설화 속에 있었다. 탄(反)은 천의 길이 단위로 1탄은 10m 정도. 모멘(木綿)은 면 또는 무명이다. 즉 잇탄모멘이란 하늘을 날다 갑자기 내려와 사람의 목을 감싸 질식시키는 살아 있는 천 요괴를 가리키는 말이다.
저자는 일본 요괴의 정리에만 그치지 않는다. 사와키 스키(1707∼1772), 이노우에 엔료(1858∼1919), 미즈키 시게루(1922∼2015) 등 이른바 ‘요괴학’이라고 불리는 요괴 연구자나 학자들의 이름과 업적을 언급하며 자신도 그들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고 말한다. 앞서 언급한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외에도 ‘이웃집 토토로’ ‘나루토’ ‘기타로’ ‘나츠메 우인장’ ‘무시시’ ‘고질라’ 등 세계를 풍미한 수많은 일본 작품을 탄생시킨 풍성한 소재는 이런 연구자와 학자들의 노력 덕이 아닌가 싶다.
깨알 팁 하나. 저자에 따르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物ののけ姫·원령공주)’의 ‘모노노케(物の怪)’는 사람에게 붙어 병에 걸리거나 죽게 하는 귀신, 생령 등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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