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음식도 키오스크로 주문… 우리가 스스로를 밀어낸 자리[이용재의 식사의 窓]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2월 19일 23시 09분



이용재 음식평론가
이용재 음식평론가
2만5000원짜리 민물장어덮밥을 먹었다. 부산의 유명한 음식점이 서울에 낸 분점 20여 곳 가운데 하나였다. 지나가다 창 너머로 보이는 무인 주문기(키오스크)에 발길이 이끌렸다. 객단가가 이렇게 높은 음식점도 식탁마다 주문기를 달아 놓았네. 최저시급이 1만320원, 두 시간 반을 꼬박 일해야 먹을 수 있는 음식과 주문기는 격이 맞지 않아 보였다.

2014년부터 패스트푸드(햄버거) 프랜차이즈를 필두로 주문기가 도입됐다. 주문을 손님에게 전가해 인건비를 절감하는 방식이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절감된 인건비는 어디로 가는 걸까? 과연 음식에 반영되는 걸까? 궁금해져 길을 걷다 말고 바로 음식점에 발을 들였다.

음식은 좋지 않았다. 분명 장어 ‘구이’인데 주문한 지 5분 만에 나왔다. 찜에 더 가까웠고, 간장과 설탕으로만 단순하게 맛을 냈다. 장어에 얹어 먹는 쪽파는 언제 썰었는지 말라비틀어졌으며, 밥 또한 충분히 시간을 들여 지은 것 같지 않았다. 샐러드의 채소는 시들시들했고, 된장국은 공산품 같았다. 한마디로 돈값을 못 하는 음식이었다.

‘차가운 도시’ 서울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전형적으로 성의 없고 질 낮은 음식이었다. 그런데 1인분 2만5000원이고, 주문과 결제까지 식탁에서 먹는 이가 직접 해야 한다. 가감 없이 모욕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여기만 그런 것도 아니다. 2만 원짜리 돈가스, 1만6000원짜리 평양냉면 전문점도 식탁마다 주문기를 달아 놓았다. 모두 가격이 설정하는 음식의 격과 여건이 전혀 맞지 않는 자충수다.

음식의 가격대가 올라갈수록 손님의 기대도 높아진다. 햄버거 프랜차이즈라면 주문기를 써도 그러려니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끼 2만5000원짜리 장어덮밥이라면 이야기가 사뭇 달라진다. 음식을 필두로 총체적인 경험이 좋아야 한다. 이를 위해 좋은 접객이 필수인데, 결제까지 자리에서 카드로 끝내는 주문기는 그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다.

주문기 도입 이후 사용자 인터페이스(UI)나 사용자 경험(UX)에 대한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느리고 직관적이지 않으며, 양식도 제각각 다르다. 그래서 특히 디지털 리터러시에 취약한 노년 인구가 쓰기 불편하다는 점이 주로 부각됐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주문기 앞에서 당황하는 어르신을 도와준 이야기가 넘쳐난다. 분명 미담이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온갖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문기는 UI와 UX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개선 없이 생활 전면에 파고들었다. 이를 뒤집기란 불가능하며, 그런 주장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막말로 비싼 음식이 돈값을 하려면 주문기를 애초에 설치하지 않아야 마땅하다. 정말 백번 양보해 그럴 수 없다면, 조리와 접객 등 인간의 영역은 이보다 더 나아져야 한다.

하지만 주문기의 도입과 더불어 음식은 물론 접객의 수준 또한 동반 하락하고 있다. 식사를 마치고 영수증을 요청했더니 직원이 종이만 덜렁 들고 와 식탁에 두고 갔다. 이런 가격의 음식을 팔면서도 영수증을 쟁반에 받쳐 오지 않는구나. 인공지능(AI)과 로봇의 시대, 인간의 설 자리가 갈수록 줄어든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아직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아니 잘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다.

#무인주문기#음식품질#고객경험#인건비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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