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슈퍼스타’ 키워 지식의 물결 일으켜야[동아광장/이지홍]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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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돌파구는 고부가가치 혁신
축적한 혁신 전파할 열린 생태계 조성해야
‘최고 선수’ 집중 지원을 재도약 지렛대로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저성장·양극화 시대를 돌파할 경제 대책을 본격적으로 고민할 때다. 국민들은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최고 수준의 복지를 원하고 있다. 여간 어려운 과제가 아니다. 앞만 보고 달리면 집도 장만하고 가정도 꾸릴 수 있던 시대는 끝났다. 소득주도성장도 실패했다. 침체된 한국 경제에 다시금 활력을 불어넣고 선진 복지 국가로의 도약을 위해선 혁신이 필수조건이다. 한국 경제의 혁신 역량에 대한 면밀한 진단과 처방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국은 미국 특허청에 미국, 일본 다음으로 많은 특허를 등록하는 국가다. 특히 반도체를 중심으로 전기·전자 등 3차 산업혁명을 주도한 산업으로 세계적 혁신 국가 반열에 올라섰다. 그러나 미국 특허는 거의 전부가 불과 몇 개 기업들로부터 출원되고 있다. 삼성, LG, 현대차…. 익히 알려진 이름들이다. 이들 ‘슈퍼스타’ 기업은 이제 모국이 아니라 글로벌 인센티브에 주도적으로 반응한다. 전 세계를 돌아보며 신기술을 섭렵하고, 최고의 인재들을 영입하고, 이들이 창조하는 발명도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 혁신 역량의 편중과 양극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몇몇 대기업들이 불리한 국내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적으로 글로벌 혁신 생태계에 안착한 반면, 오랜 기간 집중 지원을 받은 중소기업과 벤처기업들은 여전히 정부에 의존하고 국내시장에 안주하고 있다. 이들의 혁신 역량과 생산성을 반영하는 순이익률은 일반 대기업에 비해서도 한참 떨어진다. 수출을 하고 해외 특허를 취득하는 중소·벤처기업 비중도 매우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책임지고 있는 고용 비중은 경쟁국들에 비해 현격히 높다.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의 혁신 역량을 더 높이는 것이 ‘성장’과 ‘분배’ 개선에 모두 중요하다. 정부가 이를 모를 리 없다. 세제혜택, 정책금융, 동반성장 등 경제력 집중 완화를 목표로 온갖 정책들이 줄줄이 가동됐고, 현 정부는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로 격상시키기까지 했다. 그 결과 매출과 고용 등 단기적 측면에서 전혀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작 성장의 핵심 동력인 혁신과 생산성 등 보다 장기적 측면에선 과연 어떤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혁신의 본질은 그 파급 효과에 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같은 파괴적 혁신 과정은 매우 어렵고 불확실하지만 성공의 보상도 그만큼 크다. 혁신의 혜택이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로 흡수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고부가가치 혁신을 지금 한국 경제가 필요로 한다. 정부 정책의 눈높이도 이 수준에 맞출 필요가 있다. 역량이 취약한 기업들에 지원을 집중하는 정책은 취지는 좋으나 사장(死藏)될 결과물만 대량 생산할 뿐이다. 혁신만큼은 국가의 초점을 철저하게 최고의 선수들에게 맞춰야 한다.

포용적 성장에도 혁신 슈퍼스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뒤처진 기업을 돕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지원이 앞선 기업의 활동을 제한하고 상생을 강요하는 방식이 되는 것은 실제 성장은 물론 양극화 해소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계를 보고 달리는 대표 선수들이 실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이들이 축적한 혁신 역량이 사회 전체로 원활히 흐를 수 있게끔 열린 혁신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최근 들어 스마트공장 구축을 돕고 특허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등 글로벌 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지원 사례가 늘고 있긴 하다. 글로벌 기업이 유망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직접 발굴하기도 하는데, 알고 보면 네이버도 바로 삼성 사내벤처에서 탄생했다. 혁신 생태계 발전을 위해 보다 활성화돼야 할 움직임들이다.

때마침 정부가 ‘K반도체 전략’을 발표하고 반도체 산업에 대폭 지원을 예고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한국 경제의 슈퍼스타 산업을 적극 포용하려는 시도는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지원의 핵심인 연구개발(R&D)과 시설투자 세액공제가 기업 규모에 반비례하는 현 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 지원의 결실이 널리 확산되도록 혁신 생태계 개선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특히 고질적 병폐인 대학 정원 제한 등 각종 규제가 함께 완화되지 않으면 결국 특정 기업들과 그 주변만 혜택을 볼 공산이 크다.

생각해 보면, 한국 사회가 진정 우려해야 할 것은 특정 기업에 무형의 자산이 집중되고 양극화로 역량의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다. 지식의 재분배란 없기 때문이다. 지식은 오직 전파될 뿐이다. 징벌적 과세와 차별적 규제 대신 합리적 인센티브와 규제 개혁을 통해, 선도적 위치에 올라선 혁신 기업들이 지식의 곳간을 열고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이끌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혁신슈퍼스타#경제대책#고부가가치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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