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재성]AI에도 ‘핵의 1968년’이 오고 있다

  • 동아일보

美 ‘수출 금지’로 상업 AI에 첫 안보 빗장
전략자산 되며 강대국 핵통제 역사 닮아가
패권은 규칙 만들고 동맹국에도 예외 없어
AI 질서 굳기 전 한국에 짧은 시간만 남아

전재성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전재성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6월 12일 미국 상무부는 인공지능(AI) 기업 앤스로픽이 사흘 전 공개한 최첨단 AI 모델 ‘클로드 페이블 5’와 ‘클로드 미토스 5’에 외국인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지시했다. 이른바 탈옥 위험 때문인데, 앤스로픽이 모델에 걸어 둔 안전 장치를 풀어 원래는 막혀 있던 기능을 끄집어낼 위험을 말한다.

페이블 5는 사이버 공격이나 생물학 테러에 악용될 수 있는 질문이 들어오면 답을 막도록 설계돼 있다. 그러나 해킹으로 이 잠금을 풀면 그 안에 숨어 있던 미토스의 강력한 능력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앤스로픽은 반발했지만, 미국 정부의 우려는 컸다. 외국 군이나 정보기관이 이 모델을 손에 넣어 실제 사이버 공격이나 무기 개발에 쓰일 위험이 있다고 했다.

이 조치가 중요한 이유는 그간 AI 모델이 보통의 상품처럼 자유롭게 사고팔려 왔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이 막아 온 것은 첨단 반도체, 희토류 같은 재료나 하드웨어였지 완성된 모델, 즉 소프트웨어는 아니었다. 이번에는 기업이 수익을 위해 만들어 수억 명이 쓰던 모델을 정부가 안보를 이유로 거둬들였다. 이미 배포된 상업용 AI에 수출 규제가 실제로 적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I 모델도 우라늄 농축 기술이나 미사일처럼 정부가 감시하고 허가하며 추적하는 전략물자의 목록에 오르기 시작한 셈이다. 한 나라가 상업 모델을 안보자산으로 규정하고 스위치를 껐다 켤 수 있음을 한 번 보여 준 선례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모습은 핵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1945년 미국이 핵을 독점했고, 1949년 소련이 따라붙었다. 두 진영의 공포가 쌓인 끝에 1968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이 만들어졌다. 세계는 핵을 가진 다섯 나라와 갖지 못한 나머지로 갈라졌고, 그 다섯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과 같다.

AI를 여기에 견주면 챗GPT가 세상에 선을 보이고, 중국이 추격해 온 지금은 1950년대쯤이고, 미국이 먼저 빗장을 거는 모습은 1960년대로 넘어가는 신호처럼 보인다. 다만 큰 차이가 하나 있다. 핵은 처음부터 국가가 만든 군사기술이었지만 AI는 민간이 돈벌이를 위해 만든 기술로, 뒤늦게 안보 문제로 흡수된다. 그 능력이 일정한 선을 넘으면 AI는 편리한 도구이자 동시에 무기가 된다.

더 무서운 것은 대외 의존성의 문제이다. 외국 정부의 편지 한 통에 한 나라의 기업과 병원, 학교와 관공서가 쓰던 AI가 하루아침에 멈출 수 있다는 사실이 이번에 드러났다. 미국 모델에 깊이 기대어 모든 것을 돌려 온 나라들에 그 의존은 이제 단순한 편리함이 아니라 통제하기 어려운 안보 위험이 됐다. 유럽은 “AI 전쟁이 시작됐는데 우리는 빈손인가”를 자문하고 있다. 동맹국조차 사전 협의도, 예외 적용도 받지 못했다.

물론 이러한 규제가 실제로 통할지는 알 수 없다. AI는 한 나라만 가진 군사기술이 아니라 누구나 쓰는 일반 기술이라 베끼고 피해 가기가 쉽다. 1990년대 미국이 강력한 암호 기술의 수출을 막으려다 결국 실패한 일이 좋은 예다. 미국이 빗장을 세게 걸수록 중국은 반대로 자기 모델을 공짜로 풀어 개발도상국을 제 편으로 끌어들인다. 규제가 지나치면 오히려 중국 모델이 세계의 표준이 돼버릴 수도 있다.

앞으로의 길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는 동맹 중심 활용이다. 미국이 일정한 규칙을 지키는 조건으로 동맹국에만 접근을 허용하고 그 중심에 서는 길이다. 둘째는 분열이다. 미국과 중국이 각자 제 기준으로 강하게 통제하면서 지금 만들려는 국제 규범 자체가 무너지는 길이다. 셋째는 가능성은 낮지만 미국과 중국이 적대적 의존 속에서 타협해, 핵처럼 두 강대국 중심으로 비확산 체제를 세우는 길이다. 넷째는 AI에 대한 보편적 규제를 확보하는 국제협약의 길이다. 모두가 지키는 보편적 규칙을 만드는 가장 바람직하지만 어려운 길이다. 어느 쪽으로 갈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그래서 지금이 갈림길이다.

한국은 먼저 한미동맹 안에서 불가결한 동맹으로 AI 협력의 규칙을 함께 만들며 한국의 역할과 발언권을 키워야 한다. 동시에 우리 손으로 AI 모델과 그것을 돌릴 인프라를 키워 스스로의 힘을 갖춰야 한다. 처지가 비슷한 중견국들, 나아가 국제사회와 손잡고 공정하고 오래갈 표준을 만드는 일에도 앞장서야 한다. 과학기술과 외교가 함께 가야만 성공할 수 있다. 핵의 1968년이 그랬듯, 질서가 굳기 전 지금이야말로 한국이 제자리를 정할 수 있는 짧은 기회다. 그 문은 오래 열려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미국 상무부#인공지능#앤스로픽#안보 자산#기술 자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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