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에 ‘폭력배’ 비난한 바이든…트럼프는 마이크 음소거에 ‘모범생’ 변신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23일 15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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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가 22일(현지 시간) 대북 정책을 놓고 격돌했다. 대선을 열흘 남겨놓고 진행한 마지막 TV토론에서 두 후보는 북한을 비롯한 외교안보를 비롯해 의료보험, 경제, 이민 등 6개 분야의 정책을 놓고 치열한 한 판 승부를 벌였다.

이날 테네시주 내슈빌의 벨몬트대에서 진행된 토론에서 북한은 두 번째 주제인 외교안보 분야의 주요 이슈로 다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 “우리는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고 전쟁은 없었다”며 “그는 다른 종류의 사람이지만 그도 아마 나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같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행자가 ‘북한의 지도자와 세 번 만나고 아름다운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북한은 최근 사상 최대 규모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공개하며 핵무기 개발을 지속하고 있다. 북한이 관계를 배신했다고 보느냐’고 질문한 것에 대한 답변이었다.

반면 바이든 후보는 “그는 북한을 정당화해주고 폭력배(thug)인 그의 ‘좋은 친구’와 대화했다”고 비난했다. 바이든은 김 위원장을 겨냥해 ‘폭력배’라는 단어를 세 차례나 반복해서 사용했다. 그러면서 차기 대통령이 될 시 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 조건으로 “그의 나라가 가진 핵 역량을 낮추겠다는 조건에 동의해야 만나겠다. 한반도가 비핵 지대(nuclear free zone)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했으나 거절당했다고 주장했다. “그(김 위원장)는 오바마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정상회담을) 하려 하지 않았다”며 자신만이 김 위원장과 회담할 수 있는 지도자임을 내세웠다. 바이든 후보는 “우리는 히틀러가 유럽을 침공하기 전 그와도 좋은 관계를 가졌다”며 이를 일축했다. 그러면서 “그가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지 않으려 한 것은 오바마 대통령이 비핵화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받아쳤다.

●“좋은 관계” VS “히틀러와도 만남은 가능”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을 외교안보 분야의 ‘가장 큰 문제’로 언급했던 것을 상기시키며 “북한은 당시 엉망진창이었고, 초기 석 달은 매우 위험한 시기였다”고 했다. 그랬던 긴장 상황을 자신이 김 위원장과의 관계 개선으로 누그러뜨렸다는 점을 강조했다. 북한과의 전쟁을 막았다고 자찬하는 과정에서 서울 인구를 3200만 명이라고 또 다시 잘못 언급하기도 했다.

바이든 후보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북한이 4차례의 핵실험을 실시했는데도 막지 못한 것에 대한 질문을 받고 부통령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의 상황을 소개했다. 중국 측으로부터 ‘왜 여기(한반도에)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그렇게 가깝게 옮겨놓고 병력을 배치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북한 때문’이라고 본인이 대답했다는 것. 바이든 후보는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하면서 그들(북한)을 통제하고 그들이 우리를 해치지 못하게 할 것이니 (중국이) 뭔가를 하고 싶으면 분발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바이든 후보는 이어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해 “그가 한 것은 북한을 합법화해주고 불량배와 대화한 것”이라며 “그는 상황이 좋아졌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쉽게 우리 영토에 도달할 수 있는 미사일 역량을 갖췄다”고 맹비난했다.

중국과 관련해서는 최근 언론에 보도된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비밀계좌가 도마에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비즈니스맨이고 전 세계에 여러 계좌를 갖고 있다”며 “중국 계좌는 대통령 출마 전에 이미 닫았다”고 해명했다. 자신의 재선을 돕기 위해 러시아가 선거에 개입한다는 의혹을 부인하며 “러시아는 조 바이든와 그 가족에게 많은 돈을 갖다 바쳤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바이든 후보는 “그 어떤 국가로부터도 단 한 푼 받지 않았다”고 반박했고, “대선에 개입하려는 그 어떤 국가도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코로나19와 사는 법 배워” VS 바이든 “함께 죽어가는 거 배워”
이번 토론은 대선을 열흘 앞두고 두 후보가 대면한 마지막 기회. 직접 맞붙어 정책과 자질을 검증하는 결정적인 무대라는 점에서 양 측 모두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토론은 △코로나19 대응 △미국의 가정 △인종문제 △기후변화 △외교안보 △리더십의 6가지 주제로 15분씩 진행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 이후 회복한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면역이 됐다”는 말을 반복하며 “앞으로 몇 주 안에 백신이 나온다. 우리는 고비를 넘겼고 코로나19와 함께 사는 법을 배웠다”고 큰소리쳤다. 반면 바이든 후보는 22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실을 거론하며 “우리는 코로나와 함께 죽어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공세를 폈다. “대통령의 대응 결과는 비극적”이라며 “책임이 있는 사람이 대통령 자리에 남아있으면 안 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인종주의 대응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여기서 가장 덜 인종주의적인 사람”이라는 말을 두 차례 반복하며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이후 자신만큼 흑인사회를 위해 많은 일을 한 대통령은 없다고 주장했다. 바이든 후보가 과거 흑인들에게 불리한 법안을 통과시켰던 것을 지적하며 “과거 47년 간의 정치인생에서 말만 하고 실제 행동한 건 없었다”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의료보험을 놓고도 “바이든의 공약은 의료를 사회주의화 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차분해진 트럼프, ‘모범생’ 모드
두 번째이자 마지막인 이번 토론은 ‘난장판’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지난달 말 1차 토론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상대방의 발언에 끼어들기를 하거나 욕설 등 막말을 하는 모습이 거의 관찰되지 않았다. 각 후보의 모두 발언 시간에 상대 후보가 끼어들 수 없도록 마이크 음소거 조치를 한 덕분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 변화가 주목할 만 했다. 그는 바이든 후보가 발언할 때는 가만히 듣고 있는 것은 물론 뭔가를 종이에 메모하면서 성실하게 토론에 임하는 이미지도 연출했다. 사회자인 크리스틴 웰커 NBC방송 기자에게 “괜찮다면 내가 답변해도 되겠느냐?”고 먼저 묻기도 하고, 사회자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면 “감사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마이크 음소거 조치 덕분에, 끊임없이 끼어들기가 반복되던 1차 토론 때와는 달리 이번 토론에서는 여러 이슈에 대한 두 후보의 선명한 견해차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CNN방송이 토론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바이든 후보가 토론에서 이겼다는 응답은 53%, 트럼프 대통령은 39%로 집계됐다.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의 조사에서도 바이든 후보(54%)가 트럼프 대통령(35%)보다 우세했다는 답변이 많았다. 이번 토론에서 현재의 대선 판도에 영향을 줄만큼 새로운 이슈가 제기되거나 어느 한쪽이 결정적인 실수를 하는 모습은 관찰되지 않았다고 미국 내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워싱턴=이정은특파원 lightee@donga.com
뉴욕=유재동 특파원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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