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충(幼蟲) 수돗물’[횡설수설/이진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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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수돗물 불순물을 걸러주는 수도꼭지·샤워기 필터가 없어서 못 판다고 한다. 인천 서구 일대 가정에서 깔따구 유충이 발견되면서부터인데, 서울 경기 부산 등 전국으로 유충 신고가 확산되면서 폭발적으로 판매가 늘고 있다. 한 온라인 쇼핑몰은 지난 일주일 동안 샤워기 필터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00%나 급증했다. 생수 2000개를 주문한 가게도 있다고 한다.

▷최근 인천 서구 일대 수돗물에서 발견된 깔따구 유충은 이 지역에 물을 공급하는 정수장에서 유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정수장 여과지에서 발생한 유충과 가정에서 발견된 것이 분석 결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충이 약 2m 두께의 여과지와 염소소독 과정을 어떻게 통과해 가정까지 갔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서울 중구의 한 오피스텔 욕실 바닥에서 발견된 유충은 유전자 검사 중인데 다행히 해당 오피스텔 수돗물에서는 유충이 검출되지 않았다.

▷지난해 5월 서구 일대에서 ‘붉은 수돗물’ 사태가 터지자 인천시는 대대적인 개선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거의 없었다. 당시 인천시는 주민 신고에도 검사 결과 이상 없다고만 하다가 화를 키웠는데, 이번에도 최초 신고 이후 5일이나 지나서야 해당 정수장에서 유충을 발견하고 가동을 중지했다. 이 정수장은 오염원 유입 차단을 위한 밀폐시설도 갖추지 않은 채 지난해 9월부터 조기 가동됐다고 한다.

▷매를 번다는 말이 있지만 당국의 태도가 딱 그렇다. 인천시는 뒤늦게 “깔따구 유충은 학술적으로 인체 위해성이 보고된 바 없다”고 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다 자라면 1cm 정도인 깔따구는 4급수에 사는 수질 오염 지표생물. 4급수는 2급 공업용수나 농업용수로 쓰이고 어떤 물고기도 살 수 없다. 사람이 오래 접촉하면 피부병에 걸린다. 깔따구만 건져내면 마셔도 된다는 것인지 어이가 없다.

▷비싼 만큼 좋은 서비스를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가정용 상수도 요금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해마다 오염사고가 터지는데도 인천 시민들은 m³당 470원(1∼20m³ 사용 시)으로 서울보다 110원이나 더 주고 쓰고 있다.

▷2012년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열린 ‘세계 물맛대회’ 수돗물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7위를 차지했다. 아리수(서울) 미추홀 참물(인천) 빛여울 水(광주) 등 자체 수돗물 브랜드를 가진 곳도 상당수다. 하지만 2017년 상하수도협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는 사람은 7.2%에 그칠 정도로 불신이 크다. 선진국은 50%가 넘는다. 아무리 품질이 좋아도 해마다 사고가 터지면 누가 믿겠나.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수돗물 불순물#깔따구 유충#정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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