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조동주]이집트에서 ‘코리아 굿!’을 외치고 싶다

조동주 특파원 입력 2017-03-06 03:00수정 2017-03-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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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주 카이로 특파원
얼마 전 이집트 카이로 정부종합청사에 비자 연장을 신청하러 갔을 때였다. 이곳의 비자센터는 접수조차 쉽지 않고 일처리도 느리기로 악명이 높다. 비자를 안전하게 신청하려면 오전 9시 전에 가야 하고, 오전 11시를 넘기면 접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외국인을 위한 비자센터인데도 영어는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여름 부임했을 때 비자 발급에 한 달 넘게 걸렸던 악몽이 떠올라 이번엔 가까운 이집트 지인에게 동행을 부탁했다. 이집트 외교관 비서 출신인 그는 “이집트에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여주겠다”며 기자를 청사로 안내했다. 2층에 있는 비자센터 대신 엘리베이터를 타고 고층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14층짜리 청사에 2만 명 넘게 일하는데, 중앙홀 엘리베이터는 5개뿐이고 그나마 2개는 고장 나 있었다.

잔뜩 늘어선 줄 맨 뒤에 서자 그는 기자의 팔목을 잡고 씩 웃더니 뒤편으로 데려갔다. 관료용 엘리베이터 문을 여니 층수 버튼 앞에 안내원이 앉아 있었다. 그가 넉살 좋게 악수하는 척하며 1이집트파운드(약 72원)짜리 동전 3개를 몰래 쥐여주자 엘리베이터가 작동했다. 그렇게 올라간 사무실에서 그는 평소 교분이 있는 관료를 만나 준비해 온 선물을 건네곤 한참 수다를 떨었다. 비자는 다음 날 나왔다.

개발도상국 이집트에 살다 보면 이런 황당한 일을 심심찮게 겪는다. 기자가 거주하는 동네는 중산층이 사는 외국인 밀집지역인데도 밖에 나갈 때마다 개를 조심해야 한다. 자칫 물리면 광견병에 걸리기 일쑤다. 거리 대부분에 신호등이 없어 왕복 8차로 대로도 눈치껏 적당히 차를 피해 건너야 한다. 요즘에야 조금씩 신호등이 생기는데 그마저도 잘 안 지킨다. 최고급 백화점이나 영화관에서도 담배를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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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주차장에서 문을 열 때 옆 차를 콕 치기만 해도 언쟁이 붙는다. 이집트에선 다른 차에 들이받혀도 ‘인샬라’(‘신의 뜻’이라는 아랍어)를 외치곤 끝이다. 대부분의 차주들이 자동차보험을 안 들었고 피차 돈이 없어 어차피 수리비도 못 받으니 사고를 내든 당하든 그냥 넘어가는 게 관습처럼 돼 있단다. 그래서 범퍼가 땅에 끌리는데도 평온히 거리를 달리는 차가 많았던 것이다.

기자가 경험한 이집트는 한마디로,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곳이다. 서울에 있을 땐 ‘헬조선’이란 말에 공감했는데, 대한민국이 살기 좋은 나라구나 싶은 생각이 자주 들었다. 택시기사들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엄지를 치켜들며 ‘코리아 굿!’이라고 화답할 때면 괜히 흐뭇했다. 특히 히잡 쓴 무슬림 여성들이 한류에 빠져 한국인인 기자에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걸고 같이 사진 찍자고 할 때는 애국심이 샘솟았다.

1970년대 한국과 꼭 닮은 이집트에서 잠시나마 흠뻑 취했던 ‘국뽕’(국가+히로뽕의 합성어로, 과도한 애국심을 말하는 신조어) 기운은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목도하면서 희미해져갔다. 국가의 원칙과 시스템이 무너져 내린 최순실 게이트는 이집트 신문에서도 큼직하게 다뤄 망신거리가 됐다. 한국의 30대 또래 사이에서는 “역시 ‘헬조선’ ‘지옥불반도’”라는 자괴감이 만연하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래도 희망을 본다. 역대급 국정 농단 사태에도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중심으로 여전히 헌정과 법치주의는 이어지고 있다. 국민들은 저마다 나라를 위하는 애국심으로 주말에 촛불과 태극기를 들고 유혈 충돌 없는 평화 집회를 만들어냈다. 교민들도 곧 있을 헌재 결정에 승복하는 대한민국을 바라고 있다. 헌재 결정이 내려지는 그날, 이집트 택시기사와 함께 당당하게 “코리아 굿!”을 외치고 싶다.
 
조동주 카이로 특파원 djc@donga.com
#이집트 카이로#인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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