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권영민]한국문학을 위한 辨解

동아일보 입력 2015-10-13 03:00수정 2015-10-13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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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의 변방 한국문학… 외국독자 만나기는 ‘바늘구멍’
언어의 경계 뛰어넘어 독자들의 관심-사랑 받으려면
해외번역 출판 지속적 확대 필수
한국문학 소개하고 가르치는 전문연구자 지원도 더 늘려야
권영민 문학평론가 단국대 석좌교수
미국 뉴욕의 ‘아시아 소사이어티’ 책임자가 들려준 이야기다. 해마다 미국에서 출판되는 문학 작품이 1만2000여 종에 이른다. 이 책들은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어권 국가의 독서 시장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널리 배포된다. 이 가운데 영어 번역본이 전체의 3%에 해당하는데, 그중 약 15%가 아시아권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아시아권에서 나온 원작을 영어로 번역, 출판한 것이 한 해에 50여 종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한국문학 작품도 이 속에 몇 권씩 끼어 있다. 이렇게 작은 통로를 거쳐야만 한국문학은 영어권의 독자와 만날 수 있다.

한국문학 작품의 해외 번역, 출판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한국문학번역원이 설립된 후부터 해마다 수십 종의 문학 작품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여러 외국어로 번역, 출판되고 있다. 번역 과정에서 많은 번역 비용을 지불하고 출판 과정에서도 인쇄, 출판비의 상당 부분을 지원하지만 출판사는 대개 초판 1000부 정도의 제작에 만족한다. 독자층이 넓지 않으니 출판사의 판매 방식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의 문학 작품이 영어로 번역, 출판된다 하더라도 해외 독서 시장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동안 한국문학 작품이 해외에서 번역, 출판되어 외국 독자들의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경우는 별로 없다. 외국 대도시의 큰 서점을 둘러보아도 한국문학 작품을 진열한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유명 대학의 도서관에는 한국문학 책들을 비치하여 둔 곳도 있지만, 거들떠보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구석에 처박혀 있기가 일쑤다. 한국문학을 제대로 가르치는 곳도 많지 않으니 이 책들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적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광복 이후 70년이 지나는 동안 한국의 국가적 위상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문학은 여전히 세계문학의 변방에 속한다. 한국문학을 정식 강좌로 운영하는 외국 대학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북미의 경우 수천 개의 대학 가운데 30여 곳에 불과하다. 한국문학의 고급 독자를 양성할 수 있는 곳이 대학인데, 전문 연구자도 부족하고 학생들의 관심도 높지 않다. 이러한 형편이니 일반 대중 독자들이 한국문학에 관심을 갖고 직접 서점에서 한국문학 작품을 찾아 읽기를 기대하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면 한국 작가는 왜 노벨문학상을 못 받느냐고 핀잔하는 사람이 많다. 한국문학의 세계적 위상이 얼마나 초라한지를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 채, 마치 상 받을 순서를 안타깝게 놓치기라도 한 듯이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노벨문학상은 한 나라 문학의 수준을 말해주는 척도는 아니지만 어떤 문학 작품이 세계의 독자들에게 얼마나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좋은 지표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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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이 세계의 독자들과 조화롭게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해외 번역, 출판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확대할 수밖에 없다. 언어의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면 세계의 독자를 만날 수 없는 일이다.

해외에서 한국문학을 소개하며 가르치는 전문 연구자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이들은 수가 많지는 않지만 자기 언어권의 독자들을 향해 한국문학을 소개하는 일에 언제나 앞장서고 있다. 이들이 자신의 학문적 기반 위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전개하고 고급한 문화적 담론의 장을 주도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시인 고은에 대한 전문 연구가가 미국 유명 대학의 교수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황석영의 문학에 매료되어 일생 동안 그의 소설 연구에 매달리겠다는 독일의 비평가가 있다면 얼마나 뿌듯하겠는가? 이문열의 소설이 가지는 문학적 감응력을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전파하겠다는 프랑스의 전문 연구자가 생긴다면 얼마나 자랑스럽겠는가?

권영민 문학평론가 단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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