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맹자가 주목한 ‘世臣’… 기업 떠받치는 ‘오랜 벗’ 될 수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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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봉건사회에는 세신(世臣)이라는 것이 있었다. 세신은 세록지신(世祿之臣), 즉 대대로 내려오면서 관직을 받아 임금을 섬기는 신하라는 뜻이다. 맹자는 “역사가 깊은 나라는 종묘·사직에 교목(喬木)이 즐비한 나라가 아니라 세신이 있는 나라”라고 했다. 즉, 세신은 건실한 국가임을 증명하는 하나의 요소이기도 했다. 》

세신의 개념과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고려·조선시대에는 음서(蔭敍) 또는 음사(蔭仕)라는 제도가 있었다. 고위 관료나, 공신의 자제나 손자 등을 특별 채용하는 일이었다. 전(前)민주주의 사회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이 제도는 비록 폐단도 많았지만 전적으로 전근대적인 제도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맹자가 세신의 필요를 주장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인재를 등용할 때, 뉴 페이스의 발굴이 중요하다는 것은 유학자들의 일관된 지론이었다. 중세 서구에서 생각조차 못했던 과거(科擧)제도는 그 사상의 산물이다. 맹자는 몰락한 집안 출신으로 관직을 얻기 위해 열국의 왕들에게 열심히 어필해야 했던 인물이어서 세신이나 음서의 혜택을 누릴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신이 필요하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세신은 대대로 군주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 온 가족과 같이 가까운 사이이며 이로써 그 나라 역사의 한 축을 형성한 사람에 해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국사(國事)를 남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처럼 여길 것이고, 군주의 오랜 벗이 될 것이다. 또 때로는 다른 사람이 주저하는 직언까지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의 음서제 역시 애초엔 권력 세습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 부모나 친척이 나라에서 큰 은혜를 입었다면 그 자제는 은혜에 보답할 준비가 돼 있다고 여긴 것이 첫째 이유이며, 그러한 집의 자제일수록 어린 시절부터 자연히 맞춤형 교육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여기서 후자는 오늘날에는 맞지 않겠지만 첫 번째 이유는 그럴 듯하다. 공공의 일을 자기 일처럼 목숨 바쳐 열심히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믿을 만하지 않을까.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제도가 도입된다면 마치 악인의 손에 쥐여진 칼처럼 잘못 사용될 확률이 높다. 실제로 요즈음 ‘현대판 음서’라는 이름의 인사 청탁과 특권 남용이 여기저기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음서’의 의미가 잘못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세신과 음서 또한 국가나 조직을 위해서 시행돼야 하는 것이지 특권층의 ‘자리 차지’ 용도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 5년마다 수장이 바뀌는 오늘날 국가에서 세신 제도를 시행할 수는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기업에서는 가능할 수도 있다. 만일 세신 제도를 실시하고자 한다면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결코 일반적 업무를 담당할 직원이 세신이나 음서의 형태로 채용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세신은 리더를 보필하는 직책을 맡는 소수의 사람으로 한정돼야 한다.

세신 제도가 잘 활용된다면 먼 미래를 내다보고 조직을 이끌어 나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세신은 ‘오래된 벗’과 같다. 주인의식을 갖춘 조력자가 있을 때 조직은 더 튼튼해지고 오랫동안 번영할 수 있다. 맹자는 이 점을 눈여겨본 것이다. 물론 여기서 도덕성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렇지 않다면 단지 부정부패나 권력 남용을 옹호하는 일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치억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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