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AI가 이끄는 소크라테스식 수업, 학습 혁신 결과는?

  • 동아일보

질문하는 ‘소크라틱 AI’
경영대 수업에 도입해 보니
학생 스스로 답 찾도록 유도해
비판적 사고력 키워

2022년 11월 챗GPT의 등장은 대학가에 거센 파장을 일으켰다. 학생들이 과제 수행에 생성형 인공지능(AI)을 무분별하게 활용하면서, 학생 스스로의 학습 이해도와 작문 능력을 검증하던 기존 평가 체계가 무력해졌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주요 대학에서 잇따라 불거진 집단 커닝 사태는 이런 대학 평가 시스템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미 AI 활용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학생들의 AI 활용을 단순히 ‘부정행위’로 낙인찍고 원천 봉쇄하는 것은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 평가 시스템의 근본적인 혁신이 요구되는 가운데 그 대안으로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UNSW)에서 한 대학원 수업에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적용한 AI 에이전트인 일명 ‘소크라틱(Socratic) AI’를 도입해 주목할 만하다. 학생에게 먼저 질문을 던지며 대화를 주도하는 AI를 학생 평가에 적용한 사례이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1월 2호(429호)에 실린 분석 기사를 요약해 소개한다.

● ‘답 주는’ AI에서 ‘질문 던지는’ AI로

박철진 UNSW 경영대 교수는 소크라틱 AI의 효능을 실험하기 위해 ‘기술 경영과 혁신’을 주제로 하는 대학원 수업에 기존의 객관식 사지선다형 퀴즈를 대체하는 소크라틱 AI 에이전트를 도입했다. 소크라틱 AI는 기존 생성형 AI와 달리 먼저 질문을 던짐으로써 학생이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도록 설계된 AI 에이전트이다. 예컨대, 경영 전략 수업이라면 학생이 질문을 하기 전에 AI 에이전트가 먼저 “이 수업에서 이야기하는 경영 전략은 무슨 의미라고 생각해?”라고 질문을 던지면서 대화를 시작한다.

이는 교육적 관점에서 단순 지식을 확인해 주거나 내용을 안내하는 챗봇 형태의 AI와 큰 차이가 있다. 학습 내용의 논리적 구조를 사전에 학습한 AI 에이전트가 대화의 진행 방향을 먼저 설정하고 학생들의 답변에 따라 맞춤형으로 대응함으로써 교수와 학생이 일대일 면담하는 것과 유사한 환경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즉, 챗GPT 같은 범용 AI 서비스가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는 ‘백과사전’ 같은 역할을 한다면 소크라틱 AI는 학생들의 논의와 토론을 수업에 맞는 방향으로 이끄는 ‘진행자’ 역할을 맡는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학생이 답변을 잘하지 못하거나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AI는 추가 질문을 통해 점진적으로 학습을 진행시켜 학생이 스스로 사고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또한 학생이 교수자의 의도와 전혀 맞지 않는 엉뚱한 답을 할 경우 논의의 초점을 바로잡는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 학생과 교수 모두 만족

소크라틱 AI를 수업에 도입하기 위해 박 교수는 개발 과정부터 참여했다. 박 교수 머릿속에 있는 암묵지를 AI가 이해할 수 있는 ‘지식 그래프’ 형태로 변환시키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AI가 학생 수준에 맞춰 정교한 대화를 이끌어 가게 하기 위해 단순히 개념 정의를 입력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개념 간의 연결 고리와 맥락을 촘촘하게 설계해야 했다. 박 교수는 “개발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지를 고민하고, 지식의 주입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력 배양에 초점을 맞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소크라틱 AI로 평가를 받은 학생들은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기존에 없던 생소한 서비스인데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AI를 활용해 더 나은 학습 경험을 제공하려는 시도를 환영했다. 특히 기존 AI 서비스나 챗봇에 비해 훨씬 더 “사람과 대화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피드백이 많았다. 서비스 이용 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점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학생들은 심각한 불만을 표출하기보다 혁신을 위해 거쳐야 할 과정으로 수용하는 성숙한 태도를 보였다. 이처럼 학생들이 새로운 서비스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데는 ‘기술과 혁신’이라는 과목의 특성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박 교수는 수업에 앞서 이런 AI 에이전트 도입 같은 혁신의 과정에는 예상치 못한 문제와 어려움이 따를 수 있음을 학생들에게 강조했다.

교수자 입장에서도 학생들의 이해도를 정교하게 평가해 구체적으로 피드백을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기존의 퀴즈를 활용한 평가 방식은 정답 여부만 확인할 수 있었던 반면, 소크라틱 AI의 경우 학생이 핵심 개념을 얼마나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분석해 줬다. 이를 바탕으로 개개인에게 맞춤형 피드백을 제공할 수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참여도와 소통을 늘려 수업의 질을 높일 수 있었다.

● AI, 학습 동반자로

물론, 실험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겼다. 우선 특정 수업에 꼭 맞는 에이전트를 개발하려면 초기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야 한다. 또 교수자 입장에서 AI에 학습시킨 내용이 외부에 유출될지 모른다는 보안의 위험도 있다. 실제 AI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 AI에 과연 학생 평가와 채점을 어디까지 맡겨도 되는지에 대한 윤리적인 이슈도 남아있다.

하지만 이런 현실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실험은 AI 서비스가 비판의 대상이나 대체재가 아니라 교수자가 수업을 진일보시키고 학생들의 비판적인 사고를 돕는 학습 동반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박 교수는 “생성형 AI의 대중화에 발맞춰 대학 수업도 변해야 한다”며 “특히 ‘정답을 맞히는 인재’가 아니라 AI와 협력해 ‘더 나은 질문을 던지고 가치를 창출하는 인재’를 기르기 위해 앞으로 대학 수업에 AI 에이전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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