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전임 조 바이든 정부의 유산인 기업평균연비규제(CAFE)를 대폭 완화하기로 하면서 미국 자동차 업계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CAFE는 제조사가 판매한 전체 차량의 평균 연비를 정부 목표치 이상으로 맞추도록 강제하는 제도로, 기준 미달 시 막대한 벌금이 부과돼 사실상 ‘전기차 강제 할당제’로 불려 왔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에 연비 기준을 갤런당 50.4마일(L당 약 21.3km)에서 34.5마일(L당 약 14.7km)로 31.5% 낮췄습니다. 배출량이 많은 8기통(V8) 엔진 차량과 미 중산층 전통의 패밀리카였던 ‘스테이션왜건’이 부활할 길이 열렸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이번 조치에 따른 영향 분석에 분주한 모습입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6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엘라벨에 위치한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yundai Motor Group Metaplant America, HMGMA)’ 준공식에 참석해 환영사를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판매 및 DB 금지) 2025.3.27/뉴스1우선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 공장(HMGMA)을 건설하며 전동화 전환에 나선 현대자동차그룹에 대한 전망은 다소 엇갈립니다. 지난해 현대차·기아의 미국 전기차 판매 비중은 약 8%로 GM·포드 등 미국 브랜드(4~5%)의 두 배 수준입니다. 그런데 전기차 시장 둔화에 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세제 혜택 종료, CAFE 완화까지 겹치면서 내연기관차 중심 제조사들과의 경쟁에 부담이 생겼습니다. 반면 하이브리드 라인업이 탄탄한 현대차그룹이 이번 규제 완화로 반사이익을 거둘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도요타 등 일본 업체들은 이번 정책 변화의 최대 수혜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현대차와 마찬가지로 전기차 전환 부담 없이 강점인 하이브리드 판매를 극대화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입니다. 엄격한 환경 규제로 고전하던 폭스바겐 등 유럽 업체들도 규제 완화로 숨통이 트이며 내연기관 라인업 재정비를 통해 미국 시장 점유율 회복을 노릴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바뀐 경쟁 구도에서 누가 주도권을 가질지를 떠나서 주목해야 할 점이 또 하나 있습니다. 이번 규제 완화로 미국 전기차 시장이 정부 지원에서 벗어난 사이, 중국은 ‘2040년 자동차 강국 달성’ 로드맵을 발표하며 신에너지차 비중 85% 이상 달성을 천명했습니다. 전기차 전환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 미국의 정책 후퇴가 오히려 중국의 글로벌 전기차 패권을 앞당기는 역설적 결과를 낳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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