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죽어가는 걸 몰랐던 저도 죄인”… 거리로 나온 엄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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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모학대로 숨진 여아 생모 1인시위

계모의 구타로 숨진 이모 양(8)의 생모 심모 씨(42)가 19일 오전 울산지검 정문에서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심 씨는 “아이를 상습적으로 폭행해 살해한 계모를 학대치사죄가 아닌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계모의 구타로 숨진 이모 양(8)의 생모 심모 씨(42)가 19일 오전 울산지검 정문에서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심 씨는 “아이를 상습적으로 폭행해 살해한 계모를 학대치사죄가 아닌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아이가 그렇게 심한 폭행으로 죽어가는 것을 몰랐던 저도 죄인입니다. 저도 함께 처벌해 주세요.”

19일 오전 11시 50분경 울산 남구 옥동 울산지검 정문 앞. 계모에게 상습적으로 폭행당해 숨진 이모 양(8)의 생모 심모 씨(42)는 동아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눈물을 쏟았다. 심 씨는 18일부터 이곳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심 씨는 추운 날씨 속에 이렇게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내 아이를 살해한 박○○을 살인죄로 처벌해 주십시오. 아이 아빠를 공범으로 처벌해 주십시오. 저도 죄인이니 처벌해 주십시오.’

심 씨는 2009년 10월 남편 이모 씨(47)와 이혼하면서 딸과 헤어진 뒤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딸의 소식이 궁금했지만 친권이 없어 딸의 주민등록등본을 뗄 수 없다 보니 주소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전남편은 심 씨의 전화 수신을 차단했고, 딸의 이름도 바꿔 버렸다. 1,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해 딸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심 씨는 말했다.

그러다 4년 만인 지난달 25일 오후 11시경 울산 울주경찰서 형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가 학교 폭력을 당해 많이 아프다”고 했다. 심 씨가 딸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직감하고 캐물으니 형사는 “누구로부터 폭행을 당해 숨졌다”는 말을 했다. 충격이 너무 클까봐 계모가 폭행해 숨지게 한 사실을 경찰이 처음에는 전하지 않은 것.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혼절했던 심 씨는 급히 택시를 타고 경남 창원에서 울산으로 갔다. 그러곤 26일 장례식장에서 딸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심 씨는 장례식장에서 또 하나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심 씨는 전남편과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 자신이 한때 친한 친구처럼 지냈던 박모 씨(40)였고 바로 그 박 씨가 딸을 죽인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심 씨가 전남편 이 씨와 결혼한 것은 2004년 6월. 이듬해 12월 이 양을 낳았다. 하지만 분양대행사 직원인 이 씨는 아파트 건설 현장을 따라 전국을 다니기에 2009년 10월 이혼할 때까지 5년 4개월 동안 가족이 함께 살았던 기간은 1년 6개월 정도에 불과했다. 주말 또는 월말부부로 지냈다.

대구의 아파트 건설 현장에 근무하던 이 씨는 역시 대구의 부동산 중개사무소에 근무하던 박 씨를 업무상 자주 만났다. 서울에 살던 심 씨가 2007년 6월 대구로 이사를 해 세 식구가 함께 살았다. 이때 이 씨는 “낯선 도시에 빨리 적응하라”면서 박 씨를 소개시켜 줬다. 당시 박 씨도 두 딸을 가진 유부녀. 양쪽 부부가 식사도 함께 할 정도로 가까웠다. 심 씨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박 씨와 상의하며 친하게 지냈다고 했다. 심 씨는 딸을 데리고 2008년 11월 시가가 있는 경남 창원으로 이사를 했다. 이때부터 남편 이 씨는 가정에 소홀히 하다 결국 2009년 10월 이혼했다.

심 씨는 “전남편이 ‘내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고 해 양육권을 포기하고 위자료도 한 푼도 받지 않은 채 이혼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 박 씨도 이혼한 지 3개월 된 상태였다고 한다.

심 씨는 이혼 이후 우울증에 시달리며 아이가 보고 싶어 눈물로 지새는 날이 많았다. 심 씨는 남편을 통해서는 딸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가끔 박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 씨가 전남편과 결합한 사실은 모른 채 연락이 닿고 있을 테니 딸의 안부를 알아봐 달라고 한 것이다. 그때마다 박 씨는 “가끔 들여다보고 있다. 아빠가 아이 버릇을 잘 잡고 있더라”고 했다.

심 씨는 “돈을 빨리 벌어 아이를 데려다 키우려고 했는데…. 소풍 가기 위해 돈 2000원을 갖고 갔다는 이유로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그렇게 잔인하게 때려죽일 수 있느냐. 아무리 자기가 낳은 자식이 아니라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나”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심 씨는 “○○이는 늘 잘 웃고 유치원이나 친구들과 사이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하고 말도 잘 들었다”며 이혼으로 헤어지기 전까지 딸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심 씨는 13일 이 양이 다녔던 초등학교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하늘나라로 소풍가라’는 뜻을 담아 딸이 좋아하는 김밥과 과자를 올렸다. 동아일보는 반론을 듣기 위해 이 양의 생부 이 씨에게 수차례 전화를 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으나 답이 없었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울산#계모#아동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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