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이기홍]쇠고기, 서울과 워싱턴 사이의 거리

  • 입력 2008년 6월 26일 02시 58분


미국인들이 무심히 먹는 쇠고기가 한국에선 사회를 뒤흔드는 '공포'가 된 '현상'을 훗날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까 생각해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서울과 워싱턴은 비행기로 13시간 거리에 불과하지만 심리적 거리는 한없이 멀게 느껴진다.

쇠고기 논란이 본격화하기 직전인 4월 말 한국 인터넷을 보다가 충격을 받은 기억이 난다.

인터넷에는 '미국에선 애완동물 사료로도 못 쓰게 돼 있는 30개월 이상을 수입한다' '미국인들도 미국산 쇠고기를 안 먹는다'는 논리가 횡행하고 있었다.

정교하고 재미있게 만들어진 교육용 만화, 설명자료 등을 보노라니 놀랍고 화가 났다. "한미 쇠고기 협상이 이렇게 엉터리였단 말인가"라는 분노에 휩싸여 전문가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나 차분히 설명을 들어보니 그런 내용들은 대부분 허구였다. 예를 들어 '30개월 이상 소의 특정위험물질(SRM)을 애완동물의 사료로 쓸 수 없도록 한다'는 미 정부의 발표를 전하는 로이터 등 외신 보도가 한국 인터넷에선 SRM 대목은 삭제된 채 원문인 양 유통됐다.

2006년 가을 '쇠고기 뼛조각 파동'을 계기로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다뤄 와 나름대로 기본 지식이 있다고 생각해왔는데도 단숨에 인터넷의 논리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논리적 허점도 간파하지 못했단 말이냐"는 비판이 가능하지만, 처음 볼 때는 워낙 정교하게 여러 단계에 걸쳐 논리를 전개하다가 중간 중간 살짝 논리를 비약하는 식이어서 깜박 넘어가기 십상이었다.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5월 3일 '미국산 쇠고기의 오해와 진실'이란 특집 기사를 썼다. 수천 건의 댓글이 달리고 수백 건의 e메일이 왔다. 그중 90%는 욕설과 저주가 담긴 내용이었고, 5% 정도는 진지하게 다른 관점을 제기하는 글이었고, 5% 가량은 '진실을 알려줘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비난 댓글이나 e메일 중 기사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문제 삼는 글은 거의 없었다. 욕설과 비난을 퍼붓는 주된 논거는 "왜 말을 바꾸느냐"는 것이었다. "동아일보가 노무현 정부 때는 광우병 위험을 증폭시키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방침을 물고 늘어지더니 이명박 정부가 되니까 180도 표변했다"는 비난이었다.

쇠고기 문제가 이슈가 된 2006년 가을부터 올 2월까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의 주무필자 중 한 명인 기자가 쓴 26건의 쇠고기 관련 기사는 '손톱만한 뼛조각을 이유로 쇠고기 전체를 반송해버린 한국 정부의 대응에 대해 비판 여론이 높다' '쇠고기 문제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선결조건이 됐으며 이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높다'는 내용들이다. 의견이 들어가는 기자칼럼에선 일관되게 쇠고기 문제에 대한 감정적 대응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미국 & 쇠고기' 등의 검색어를 넣고 노무현 정부 5년간 동아일보의 사설을 검색해봤다. 15건이 떴다. 그중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된 직후인 2003년 12월 '광우병 비상에서 식탁안전을 지키자'고 강조한 2건의 사설을 제외하면, 동아일보 사설은 한결같이 '쇠고기 문제를 국제기준에 근거해서 풀어야 한다'며 개방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인터넷에는 동아일보 자매지인 주간동아와 동아사이언스가 각각 2007년 7월과 2007년 3월에 작성해 각각 주간지와 본지에 게재한 광우병의 위험성을 경계하는 2건의 기사가 마치 노무현 정부 시절 동아일보 논조를 대표하는 것처럼 포장돼 떠돌았다. 그중 동아사이언스에서 작성한 기사는 한국인 유전자와 프리온 질병 감염의 상관관계를 다룬 한림대 연구팀의 연구결과를 전한 내용이었다.

이 2건의 기사에 근거해 정치권과 일부 언론들도 '메이저 신문이 말 바꾸기를 한다'고 비난했다. '가상의 동아일보'를 만들어 도마 위에 올려놓고 자기들끼리 마녀사냥식 재판을 해대는 격이었다.

어쨌든 '미국산 쇠고기의 오해와 진실'기사가 나가고, 정부도 뒤늦게 설명회를 가진 영향인지 인터넷에선 '애완동물 사료로도 안 쓴다' '미국인들도 미국 쇠고기를 안 먹는다'는 주장은 거의 사라졌다.

그 대신 인터넷엔 '한국에 수입될 고기는 미국인들이 먹는 것과 다르다. 한국에는 나이든 소, 쓰레기 같은 고기가 들어올 것'이란 논리가 등장했다.

기자는 수년 전 워싱턴 조지타운대 교정을 걷다가 동물보호 단체회원들이 건네준 팸플릿을 보고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 정확한 숫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미국에서 사육되는 소의 평균 도축월령이 불과 생후 1년(다른 통계엔 18개월)을 조금 넘고, 닭과 돼지 역시 몸이 다 크자마자 도살장으로 향하는 것으로 조사돼 있었다. '그들도 귀중한 생명인데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라는 안타까움이 밀려들었다.

미국 내에서 소비되는 쇠고기의 85~95%가 30개월 미만인 것은 이처럼 '잔인한' 육류업자들이 최소 사육비용을 들여 고수익을 얻으려고 소가 어른 체격이 되자마자, 혹은 다 자라기도 전에 도축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쇠고기의 대부분이 30개월 미만에 도축된 소여서 소비 통계도 대부분 30개월 미만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마치 한국 인터넷에선 '미국 국내에는 의도적으로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골라 유통시키고 나머지는 한국으로 수출할 것'이란 논리로 둔갑했다. 미국 내수시장에는 쇠고기 연령제한이 없다. 마트에서 월령별로 구분해 팔지도 않는다. 일부러 소의 연령을 구분해 구입하는 방법이 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비싸고 높은 등급의, 연한 고기를 살수록 나이 어린 소의 고기일 확률이 높아질 뿐이다.

미국의 도축 및 유통 시스템 상 한국에만 나이든 소, 미국인들은 외면하는 낮은 품질의 고기가 수입되는 상황은 한국 시장 시스템이 상품 선별 기능을 잃은 상황을 전제로, 누군가 고의적으로 은밀하게 악덕 상행위를 도모하는 상황에서나 가능한 논리다. 만약 그런 악덕 상술이 발호한다면 그 타깃은 미국 국내 시장이 될 수도 있다.

쇠고기 수출 시장은 '셀러스 마켓'(seller's market)이다. 수출업자는 대기업인데 수입상은 수백 곳이 넘는다. 수입상 간에 경쟁이 일어나고, 일부 비도덕적인 수입상이 값싼 나이든 소의 고기를 들여와 한우로 둔갑시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스테이크나 구이로는 고기가 질긴 걸 보면 금방 판별이 되지만 탕 종류로 유통될 경우 판별이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추가협상으로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입이 차단됨으로써 그런 범죄적 상황의 발생 가능성도 현저히 줄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아무 제한이 없었던 2003년 이전의 상황을 반추해보면 앞날을 예측하는데 참고가 되지 않을까. 당시 한국에 수입된 고기가 다 저질품이었을까. 8개 등급으로 분류되는 쇠고기 가운데 당시 한국에 수입된 미국산 쇠고기는 최고 등급인 프라임이 5%였고 2, 3등급인 초이스와 셀렉트가 70~80%였던 것으로 통계가 잡힌다.

물론 기자가 '미국산 쇠고기의 오해와 진실' 기사에서도 지적했듯이 4월 한미 쇠고기 협상은 허술하기 그지없었다. 국제기준을 준거로 삼는다 해도 그 틀 내에서 움직일 수 있는 탄력적 공간이 상당히 있기 마련인데, 한국 측은 이를 거의 확보하지 못한 채 내주기만 했다.

올 2월 말까지만 해도 개방 반대 논리를 만드는 데만 골몰하다 갑자기 개방 쪽으로 방향을 튼 한국 공무원들이 '교활하고 노련하게 철저히 자기 이익을 챙기는' 미국 대표단에게 일방적으로 당한 협상이었다. 특히 아무리 SRM이 아니고 실제론 위험이 적을지라도 내장을 즐겨먹는 한국의 음식문화를 감안할 때 내장 수입에 대한 국민들의 정서적 민감성을 심각히 고려했어야 했다. 30개월 이하 SRM 분류를 국제기준 그대로 2개로 줄인 대목도 "무조건 국제기준대로만 할 거면 협상은 왜 필요했느냐"란 비판을 받아 마땅했다.

2006년 가을 뼛조각 반송에 '반미'란 사(私)가 끼었듯이, 2008년 4월 협상에도 '정치적 고려'라는 사(私)가 낀 것이었다.

허술한 협상결과 때문에 정부의 말발이 약해진 가운데 일부 언론들은 과장, 선동성 보도를 서슴없이 했다. 수많은 팩트(사실) 가운데 자의적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이어가는 행태도 난무했다.

한국과 미국을 수백만 명이 오가고, 누구도 미국의 실상을 왜곡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일부 한국 언론에 비쳐지는 미국은 기자가 접하는 미국과는 달랐다.

MBC 100분토론에 전화를 건 애틀랜타에 산다는 주부는 미국의 유기농 식품 전문 마트인 '호울 푸드'(whole food)를 들먹이며, 미국인들도 광우병을 우려해 불안해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을 폈고, 인터넷에서 '영웅'이 됐다.

자기가 보는 게 진실이라고 누가 100% 장담할 수 있을까마는, 한국의 '풀무원'처럼 유기농을 찾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마트인 호울푸드의 인기가 광우병과는 직접 관련이 없으며, 대다수 미국 소비자는 한국인들이 매일 매일 수많은 먹을거리들을 미심쩍어 하면서도 사먹는 그런 심정과 비슷하게 쇠고기를 비롯한 식품들을 별 걱정 없이 먹고 있다고 보는 게 아마도 평균적 실상에 더 근접한 것일 것이다.

광우병 때문에 쇠고기를 안 먹는다는 미국 사람은 과문한 탓인지 아직 찾지 못했다. 그 주부는 나름대로 자신의 눈에 비친 세상을 전체로 여긴 것이겠지만, 굳이 그런 의견을 가진 사람을 찾아내 연결시키는 제작진의 의도는 분명해 보였다.

PD수첩이 방영한 다우너 소 동영상도 결코 새로운 게 아니었다. 동아일보를 비롯한 국내외 대다수 언론이 이미 2월 19일에 '미국 사상 최대 쇠고기 리콜'이란 제하에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도한 동영상이었다. PD수첩 제작진이 그 동영상이 광우병 소 고발이 아니라 도축장 위생관리의 허점, 동물학대 폭로 동영상이란 걸 몰랐을 리는 없다.

한국사회의 분위기가 막연한 공포와 불신이 과학과 이성을 압도하는 것 같다는 안타까움 속에서도 기자는 솔직히 양국이 다시 협상하기를 바랐다. 몇 억 분의 1의 위험이라도 더 줄여 몇 십억 분의 1로 만들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하며, 더 얻어낼 수 있는 게 조금이라도 있다면 최대한 뺏어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물론 그 대가로 우리는 한미 FTA를 잃을 수 있지만, 한국민들이 'FTA보다는 0.0…1%의 식탁안전에 대한 위험이라도 제거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우리 사회의 운명이고 한계라고 생각했다.

촛불집회가 미국을 다시 협상장으로 끌어내고, 우리의 협상력을 높여준 압력요인이 됐다는 점을 평가하면서도 기자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대목이 있다. 이를 1987년의 6월 항쟁의 연장선상이라고 표현하는 주장들이다.

6월 항쟁 당시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었다. 개중엔 주사파 운동권도 있었지만 핵심은 순수하게 민주화를 염원하는 학생들이었고, 회사원들과 중고생, 택시기사들의 요란한 경적소리가 함께 했다.

이번 촛불집회 구성원에도 진보·반미단체 인사들이 많지만 유모차를 끈 주부들, 중고생들이 참여함으로써 여론 대표성을 높여줬다.

그러나 결정적 차이는 이 다양한 구성원들을 결집시켜준 핵심 명분의 정당성, 합리성, 역사성이다.

6월 항쟁을 결집시킨 핵심 고리는 직선제 민주화였다. 당시 시대상황에 대한 참가자들의 판단과 인식은 치열하고 정확했다. 독재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던 방송과 친정권 신문들의 집요한 '왜곡 보도'에 휩쓸리지 않았다.

핵심 요구사항을 이뤄내지 못할 경우의 대가는 군부 독재의 연장, 고문과 강제연행 시대의 연장, 언론탄압, 부정부패 권력의 영속화였다.

이번 촛불집회의 군중을 한데 묶어준 핵심 고리는 미국산 쇠고기 문제다. 그 요구사항을 이뤄내지 못할 때의 대가는 무엇일까.

주부, 중고생들의 순수한 열정과는 별개로 참가자들의 미국 쇠고기에 대한 인식은 과연 얼마나 진실과 결합했는가. 방송과 일부 신문, 인터넷에 떠도는 과장되거나 한쪽으로 몰고 가는 보도에 영향 받은 측면은 없는가.

촛불집회는 결과적으로 더 나은 협상 결과를 이끌어내는 동력을 발휘했다. 건강, 통상, 동맹, 주권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입체적인 사안을 단선적으로 접근했던 정권의 허술한 자세에 일침을 놓았다. 역사는 그런 대목을 평가할 것이다.

하지만 지난 근 두 달간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의적으로 대중을 선동하고 허위 논리를 만들어 퍼뜨린 주체가 있다면, 그리고 동기의 순수성과 상관없이 그 허위논리의 유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가담해 상승 사이클에 일조했다면, 각자가 거기에 참여한 몫만큼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그런 행동을 감히 6월 항쟁에 비유한다면 그것은 민주항쟁에 대한 모독이다.

이기홍 워싱턴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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