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이미 당신 곁에 있다[허명현의 클래식이 뭐라고]

  • 동아일보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우리는 언제 음악을 듣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을 때, 공연장에서 조명이 어두워지고 연주가 시작될 때, 우리는 주저 없이 그것을 음악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이런 순간은 어떨까. 어느 저녁 부엌에서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을 때, 창밖에서 빗소리가 들릴 때, 세탁기가 일정한 박자로 돌아갈 때, 기차가 철로 위를 달리며 규칙적인 소리를 낼 때, 우리는 무엇을 듣고 있는 걸까. 그 소리들은 음악이 아닌 걸까. 우리가 익숙하게 ‘음악’이라고 부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는 과연 분명한 경계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오랫동안 음악을 정리된 소리라고 배워 왔다. 멜로디가 있고, 리듬이 있고, 누군가가 의도를 가지고 배열한 소리다. 악보로 기록되고, 연주로 재현되는 체계 안에 있을 때 비로소 음악이 된다고 여겨 왔다. 그래서 음악은 때로 조금 멀게 느껴진다.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전문적인 세계이고, 배워야만 이해할 수 있는 영역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음악이란 건 공연장 안에서만 온전히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일정한 형식과 규칙 속에서만 인정받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음악의 유래를 떠올려 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아주 오래전 인간은 자연의 소리 속에서 살았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 물이 흐르는 소리, 동물의 울음소리. 그리고 인간은 그 소리들 속에서 리듬을 발견했다. 그 리듬을 따라 북을 두드리고, 손뼉을 치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의 현장에서 리듬을 맞추기 위해, 의식을 치르기 위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소리를 반복했다. 같은 박자를 공유하는 일은 곧 같은 시간을 나누는 일이었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 음악은 거창한 예술이기 이전에 함께 시간을 나누는 방식이었다.

음악은 처음부터 특정한 공간이나 형식 안에만 머물러 있던 것이 아니었다. 같은 리듬을 나누고, 같은 순간을 함께 느끼는 일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이어져 왔다. 그것은 공연장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소리와 함께 섞여 있었고, 특별한 경계 없이 삶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정리된 음악’의 모습은 오히려 나중에 만들어진 하나의 방식에 가깝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생각은 그다음으로 이어진다. 음악이 특정한 형식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소리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듣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은 누구에게나 같은 방식으로 들리는 것일까.

사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빗소리가 가장 편안한 자장가가 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축축한 소음일 뿐이라는 것을. 선풍기가 일정한 속도로 돌아가는 소리에 잠이 드는 사람도 있고, 그 소리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더 나아가 같은 사람에게도 소리는 매번 다르게 다가온다. 어제는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냈던 소리가 오늘은 유난히 또렷하게 들리기도 한다. 기분이 잔잔한 날에는 창밖의 작은 소음조차 하나의 리듬처럼 느껴지고, 마음이 어지러운 날에는 가장 부드러운 소리도 그저 무심하게 스쳐 지나간다. 그 차이는 소리 자체보다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상태에서 생겨난다. 같은 음악을 들어도 어느 날은 깊이 남고, 어느 날은 거의 기억에 남지 않는 것처럼 듣는다는 행위는 늘 현재의 감정과 맞닿아 있다. 그러니까 음악은 소리가 아니라 태도다.

결국 모든 소리가 음악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음악으로 부르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잠시 멈춰 서서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가 만들어내는 시간을 받아들일 때 일상은 조금씩 변한다. 같은 공간, 같은 순간도 전혀 다른 결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특별한 무대도, 화려한 악기도 필요 없다. 보글보글 끓는 냄비 소리도, 추적추적 내리는 비도 우리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음악이다.

그래서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무엇이 음악인가가 아니라 우리는 어디까지를 음악으로 허락할 것인가. 그 범위를 조금 넓히는 순간,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음악으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미 우리는 수많은 소리 속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고, 그중 일부는 우리가 알아차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음악은 멀리 있지 않다. 당신이 지금 있는 바로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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