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카페]산업은행 54주년 우울한 ‘생일잔치’

  • 입력 2008년 4월 2일 03시 06분


1일은 한국산업은행의 창립 54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1954년 자본금 4000만 원으로 설립된 산업은행은 지금은 자산이 100조 원을 넘고, 자회사도 4개나 거느린 대형 국책은행으로 급성장했죠. 이 은행의 역사는 한국의 경제 발전사와 맥을 같이합니다.

그런데 이날만은 도무지 생일 잔칫집의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전날(3월 31일) 이명박 대통령은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산업은행이 여전히 은행장 명칭을 ‘총재’로 쓰고 있다.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또 “공직자 출신이 일선 금융기관장으로 가면서 민간에서 인재가 클 수 없게끔 돼 있었다”고도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금융위원회가 ‘산은 총재로 국제 경쟁력이 있는 최고경영자(CEO)를 영입하겠다’고 보고한 것에 대해서도 행원들은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총재는 국제 경쟁력이 없었다는 뜻이냐”는 자괴감 섞인 반응이 나왔습니다.

임기를 8개월 정도 남긴 김창록 총재의 마음도 착잡할 겁니다. 옛 재무부 관료 출신인 김 총재는 대학 졸업 후 산은의 신입행원으로 잠시 일한 적이 있었습니다. 퇴직 33년 만에 33대 총재로 복귀한 그는 이제 민영화라는 시대적 과제를 자기 손으로 집행해야 합니다.

정부의 계획대로 산은이 올해 안에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된다면 이번이 ‘산업은행’이라는 이름으로 맞는 마지막 생일이 될지 모릅니다.

산업은행은 올해 조용하게 창립기념식을 치렀습니다. 김 총재는 이날 행내(行內) 방송으로 낭독한 기념사를 통해 “파부침선(破釜沈船·전투에 앞서 솥을 깨뜨리고 배를 가라앉혀 스스로 퇴로를 차단함)의 결연한 의지로 국책은행의 체질을 떨치고 새로운 미래에 대한 도전을 준비하자”고 당부했습니다.

김 총재의 말대로 죽을 각오로 싸움에 나서 ‘가장 경쟁력 있는 은행’으로 보란 듯이 거듭나는 것이 스스로 살고, 우리 금융의 수준도 한 계단 끌어올리는 길이 될 것입니다. 지금의 무거운 침묵이 조만간 밝은 웃음으로 바뀌길 기대해 봅니다.

유재동 기자 경제부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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