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심판 ‘군림의 역사관’ 버려야
듣는 이의 가슴을 따뜻하게 적시는 대목이었다. 대통령 자신이 기업가 출신이라서 뺐는지 모르겠지만, 기업가의 창의적인 경영활동도 그 위대한 이야기에 포함돼야 한다. 다른 무엇보다 나라의 기틀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올바로 잡았던 건국의 원훈(元勳)들이야말로 그 위대한 이야기의 창시자들이다.
5년 전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사가 생각난다. “우리의 근·현대사는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정의는 패배했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다”고 했다. 우리의 건국사가 도덕적으로 실패했다는 이 비감한 어조의 단정에 많은 국민이 동의한 것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가 임기 후반에 국민의 마음에서 멀어진 것은 이런 잘못된 역사관도 한 원인이다. 바람직한 역사관은 많은 사람을 한마음으로 모으는 통합적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의 아픔과 모순을 삶의 교훈으로 성찰하는 역사관이어야지, 남을 도덕적으로 심판하고 배제하고 군림하는 역사관이어서는 아니 되는 법이다.
그 점에서 지난 정부가 추구해 온 과거사 청산 작업에도 마냥 찬성할 수 없음이 저간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정의가 패배한’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무려 16개나 되는 특별위원회가 만들어져 지난 몇 년간 수천억 원의 예산을 들여 조사활동을 벌였지만, 무슨 역사적 진실이 새롭게 규명됐는지 잘 모르겠다. 멀게는 100년도 더 된 역사적 사실을 정치와 법률로 재단해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아직 우리 지성사회가 정치와 역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후진 상태임을 드러낼 뿐일지도 모르겠다.
새 정부가 흐트러진 역사를 바로잡는 데 무엇보다 중시할 것은 역사교과서를 다시 쓰는 문제다. 한마디로 지금의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는 지난 세기의 보통 한국인들의 위대한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다. 식민지적 억압과 차별 속에서도 근대 문명을 익히고 실천함으로써 국민국가가 생겨났을 때 밑거름 역할을 했던 수많은 한국인의 진실한 삶의 이야기를 도외시하고 있다. 지금의 교과서는 역사의 지상과제로 민족통일만을 내세워 대한민국의 건국을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이라는 사건으로 왜소화하고 있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 정치제도는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개화기 이래 자유와 인권의 기본 가치를 도입한 수많은 선각자의 애타는 노력이 전제된 위에, 일제를 패망시키고 이 땅에 상륙한 나라가 그러한 이념에 입각한 미국이란 나라였기 때문이다. 다른 원인과 배경도 있지만 이보다 더 중요하거나 직접적인 것은 없다. 그럼에도 지금의 교과서는 그러한 역사의 벌거벗은 진실을 가르치고 있지 않다. 그러기는커녕 미국에 의해 해방된 것은 우리가 바라는 통일국가의 건설에 장애가 됐다고 쓰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집단적 위선이다. 그런 교과서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그런 후진적 정신문화에서 경제만의 선진한국을 추구한다면, 차라리 나무에 올라 고기를 잡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위대한 이야기 교과서에 담자
마침 새로 임명된 정옥자 국사편찬위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정부의 역사관이 진보라는 이름 아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손상시키는 일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역사학계를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분의 발언이라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그런 성찰이 민족통일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 한국인의 진실한 삶의 이야기도 가득 담은 교과서의 편찬으로 이어지면 좋겠다.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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