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정호]할인점 합병 꼭 막을 일인가

  • 입력 2006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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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장사 수완은 대단하다. 세계 최고의 유통기업인 월마트와 까르푸가 토종 할인점들과의 경쟁에서 손을 들고 나가게 되었으니 말이다. 1778년 박제가 선생이 ‘북학의’에서 조선에서도 상업을 장려하자고 외로이 외쳤을 때 이미 우리 피 속의 뛰어난 장사꾼 기질을 알아챈 선견지명이 있었던 듯하다. 이번 일은 한국인이 유통에서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좋은 징조로 믿어도 될 것 같다.

그런데 호사다마라 했던가. 월마트와 까르푸의 철수가 골칫거리도 몰고 왔다. 이들을 사들인 이마트와 이랜드가 공정거래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점포들을 다시 매각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공정위의 관심사는 독과점이다. 이마트가 월마트를 인수하면 경쟁관계였던 두 업체가 하나가 되고, 독과점적 지위를 이용해서 가격을 올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가능은 하지만 확률은 그리 높지 않은 걱정이다. 소비자들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장에는 이들 말고도 홈플러스, 롯데마트, 동네 ‘슈퍼’ 등 많은 경쟁자가 있다. 만약 합병을 이용해서 가격을 높이고 품질을 낮춘다면 몇백 원의 가격 차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부들은 당장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릴 것이다. 게다가 이제 웬만한 집엔 다 자동차가 있으니 다른 할인점이 조금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도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니 합병을 통한 매장 수의 확대는 낮은 품질의 상품을 높은 값에 팔기 위한 수단이기보다는,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일 확률이 크다. 점포가 늘면 공동구매와 공동출하를 통해 더 좋은 제품을 더 낮은 가격에 제공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가격 인하와 품질 향상이 할인점들의 생존전략이었듯이 합병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합병 때문에 소비자가 손해를 볼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으니, 공정위의 이 사안에 대한 관심은 정당하다. 하지만 수단의 선택은 신중해야 한다. 칼이 강도의 손에 들어가 남을 해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해서 강도처럼 생긴 사람은 모두 칼을 쓸 수 없게 금지하는 것은 어리석다. 그런 사람 중에도 칼을 이롭게 사용할 사람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마음대로 칼을 쓰게 한 후, 흉기로 사용했을 때만 처벌하는 것이 옳다. 합병도 원천 봉쇄하기보다는 값을 높이는 등 소비자의 이익을 해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을 때만 제재를 가하는 쪽이 현명하다.

물론 합병 때문에 해당 점포의 제품 값이 높아졌는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처럼 합병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도 전에 그 효과를 예단해서 합병을 무효화하는 것보다는 훨씬 쉽고 정확하다.

르노-닛산과 GM차 사이의 합병 움직임에서 볼 수 있듯이, 기업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규모의 경제 달성을 위한 합병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최근 동양제철화학에 대해 새로 인수합병한 CCK나 기존 공장을 매각하라고 명령했던 것처럼, 공정위가 합병을 무효화하는 일이 빈발한다면, 기업들에 합병은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위험한 전략이 된다. 그 결과 기존 시설의 합병보다는 새로운 플랜트나 시설의 설립이 유리해진다. 사회적 관점에서 본다면 그만큼 중복투자의 가능성도 높아지는 셈이다.

무엇보다도 정부나 정치권이 지금까지 할인점을 대해 온 태도에 비추어 볼 때, 이번 일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특히 국회의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할인점의 신설을 막는 데에 열을 올려 왔다. 심지어 할인점이라는 이름조차 못 쓰게 했을 정도가 아닌가. 하지만 그럴수록 할인점 간의 경쟁이 줄어든다. 그래 놓고 또 한편으로는 경쟁이 줄어들 수도 있으니 합병을 무효화할 수도 있다고 하는 것은 같은 나라의 국가기관들이 하는 일치고는 너무 모순이 크다.

할인점들이 치열하게 경쟁해야 소비자들(대다수의 국민)의 살림살이가 좋아진다. 경쟁을 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할인점 설립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것이다. 공정위도 합병을 심사하는 데에 쏟아 붓는 노력을, 할인점 설립 억제 법을 만들어서 소비자의 이익을 해치는 국회의원들과 다른 공무원들의 어리석은 입법행위를 막는 데로 돌려야 하지 않을까.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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