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한민국 自尊하자

  • 입력 2005년 12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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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으며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근대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뤄 내고 국내총생산이 세계 10위권에 올라선 경제 중강국(中强國)이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이 하루 세 끼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40년 전부터다. 절대빈곤에서 벗어나기까지 산업화 세대가 흘린 피땀을 기억해야 한다. 또 공산화(共産化)의 위기에서 구해 준 우방들, 특히 미국이 없었다면 오늘의 번영을 상상하기 어렵다. 선배 세대와 국제사회에 진 빚을 망각하고 교만에 빠져 세계의 대세를 거스르며 국내적 혼란과 대외적 실패를 거듭한다면 언제 다시 추락할지 모른다. 지난날 지도층이 못나고 국력이 약해 일제(日帝)에 나라를 빼앗겼고, 그 역사의 연장선에서 반도의 허리가 끊어졌다. ‘민족끼리’를 아무리 외쳐도 주변 강대국들이 신뢰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통일을 기약할 수 없다.

세계 각국은 경쟁과 협력의 두 바퀴로 미래를 향해 달리고 있다. 번영과 평화, 경제와 안보의 실익(實益)을 위해 한편으론 무한경쟁을 벌이고 또 한편으론 국가 간 협력 체제를 다각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느냐, 그 문턱에서 주저앉고 마느냐 하는 것도 세계 속에 답이 있다. 국제적 경쟁과 협력의 복잡한 구조를 읽지 못하고 세계의 흐름과 동떨어져, 좁은 나라 안에서 권력과 부(富)의 제로섬 게임에만 몰두하고 있어서는 희망이 없다. 당대(當代)의 퇴보는 물론이고 후대(後代)에 빚을 떠넘기는 죄를 짓게 될 것이다. 이미 지난 3년간의 정체(停滯) 때문에도 대한민국은 더는 과거를 먹고 살 수 없는 나라가 됐다.

정부와 연구기관들은 무리하지 않고도 달성할 수 있는 우리 경제의 성장능력(잠재성장률)을 4.8∼5%로 보고 있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권 1년차에 3.1%, 2년차에 4.6%, 3년차에 3.8% 안팎(추정)의 성적으로 잠재성장률 달성에 실패했다. 고성장 경쟁국들과의 격차는 더욱 크다. 이런 저성장 속에서는 아무리 분배를 강조해도 서민의 삶이 개선되지 않는다. 양극화 확대가 이를 입증한다. 부유층과 대기업을 때려 서민층 중산층과 중소기업의 ‘배 아픔’을 잠시 달래 줄 수는 있을지언정 말로써 양극화를 해소할 수는 없다. 다수 국민에게 소수의 대기업과 부유층을 미워하도록 몰아가면 잠시 정치적 이득을 취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경제의 파이와 분배의 여지는 더 작아진다. 결국 국민 분열과 사회 갈등의 골이 깊어질 뿐이다.

▼시장원리 거여가고는 민생 못 살린다▼

주로 해외에서 큰돈을 버는 대기업들은 혼신의 노력으로 세계적 경쟁력을 창출해 낸 승자(勝者)들이다. 이들을 출자총액 제한, 투자 업종과 용도 제한 같은 규제 사슬에서 풀어 줘 보라. 선두 기업들의 국내 투자가 활발해질 것이다. 그러면 해외 투자 못지않은 국내 투자의 연쇄적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 투자뿐 아니라 국내 소비 증가 없이는 성장 제고와 이를 통한 분배 개선을 꾀하기 힘들다. 부유층을 세금과 질시로 옥죄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들이 나라 안에서 고급 소비를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보라. 서비스산업 진입과 영업에 대한 규제도 대폭 풀어 서비스의 질이 차별화 다양화되도록 해 보라. 해외로 빠져나가는 소비가 줄고 더 많은 돈이 국내에서 돌아 일자리도 늘어날 수 있다. 이런 것이 시장 원리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시장 원리에 충실하자고 국민을 설득하기는커녕 시장 원리와 돈의 생리를 억지로 뒤틀려는 정책을 남발한다. 강자를 공격해 약자의 환심을 사려는 얄팍한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다. 이런 정책은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결국 서민층 중산층을 더 힘들게 한다. 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국가와 국민이라야 세계적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이를 통해 나라 전체의 부(富)를 늘리고,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지원과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 포퓰리즘 정치에 속지 않을 뿐 아니라 단호히 배격하는 것이 국민이 선택할 자구(自救)의 길이다.

교육의 포퓰리즘도 거부해야 한다. 노 정권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손발을 맞춰 평등교육을 고집하지만 이로써 평등이 실현되지는 않는다. 낡은 좌파 이념에 사로잡혀 아무리 경쟁을 죄악시해도 교육에 경쟁이 없을 수 없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우리보다 훨씬 경쟁적으로 학력(學力)을 높이고 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국가와 개인의 미래를 열어 주는 길이기 때문이다. 만약 대다수 국민이 전교조처럼 세계화를 악으로 여기고, 교사와 학생의 무(無)경쟁을 지지한다면 이는 국력을 시들게 하는 지름길이다. 전교조의 주장을 믿는 학생과 학부모가 가장 큰 피해자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체제 정통성 흔드는 세력에 단호히 맞서야▼

대한민국을 ‘잘못 세워진 부끄러운 나라’로 낙인찍으며 국가 정체성(正體性)을 흔드는 세력에 대해서도 결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많은 국민이 이들에게 세뇌당해 조국에 대한 자긍심을 버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내 나라를 자존(自尊)하지 않는 국민이 세계로부터 대접받을 수 있겠으며, 나은 미래를 열어갈 수 있겠는가. 개발연대의 정권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음에도 반민주 반인권의 과오도 적지 않게 저질렀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큰 잘못이었다 해도 2300만 주민을 굶주림과 노예 같은 삶으로 몰아넣은 북한 지배집단의 죄악보다 크다고는 할 수 없다. 국가 정체성을 둘러싼 이념적 사회적 단절과 분열을 올해는 끝내고, 국기(國基)를 다시 세워야 한다.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대한민국에서 희망을 찾고자 하는 국민이라면 이에 힘을 보태야 한다.

노 정권은 분열의 정치로 3년을 소모했다. 만약 4년차에도 ‘적의(敵意)의 리더십’을 버리지 않는다면 국민은 정권을 외면하고 국가와 개인의 앞길을 스스로 개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노 정권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자는 것은 아니다. 3년간 ‘집권의 전리품(戰利品)’을 챙길 만큼 챙긴 정권이니 이제 남은 2년은 절대다수 국민의 여망을 따르기 바란다. 결과가 공허한 선동적 정치로 국민을 더 우왕좌왕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세계의 변화와 도전을 빠르고 바르게 읽고, 국민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비전과 방책을 제시하며, 미래를 위해 국가총력을 결집시키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야당들도 ‘대안의 가능성’을 행동으로 입증해야 한다.

2006년은 대한민국이 20세기형 이념 틀을 깨고 21세기형 선진 패러다임을 가시화(可視化)하는 한 해가 돼야 한다. 낡은 보수와 수구 좌파는 역사의 박물관으로 함께 보내야 한다. 본보는 대한민국 체제를 흔드는 세력에 끝까지 맞설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지킴이 역할에 충실할 것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아끼고, 대한민국 속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국민 편에서 언론의 역할을 다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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