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송대근]다시 떠오른 ‘KBO 낙하산’

  • 입력 2005년 12월 26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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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11월 어느 날, 프로야구 창립총회를 앞두고 핵심 실무자 두 사람이 청와대를 찾았다. 프로야구 총재 선임 문제를 교육문화수석비서관과 협의하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은 준비해 간 후보 10명의 명단을 내놓았다. 거기에는 최규하 전 대통령, 신현확 전 국무총리의 이름도 들어 있었다. ‘신군부 정권’을 의식해 군 요직을 두루 거친 인사도 후보로 올렸다. 하지만 명단을 훑어본 교문수석은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두 사람은 감을 잡고 “그럼 수석께서 정해 주시지요”라고 운을 뗐다. 즉각 “그러시다면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서종철 장군이 어떨까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전두환 대통령의 의중(意中)을 전한 것이다.

이미 알려졌듯이 프로야구는 5공의 ‘정치적 작품’이다. 국민의 관심을 스포츠로 돌려 정통성 시비를 덜어 보려는 정권의 의도가 깔려 있었다. 출범 후에도 각종 정책적 지원이 뒤따랐다. 이런 태생적 한계 때문인지 프로야구를 이끌어 가는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자리는 늘 정권의 몫이었다. 미디어에 노출될 기회가 많은 데다 보수도 상당해 ‘낙하산 대기자’가 줄을 이었다. 이들에겐 총재 자리가 일종의 ‘재기(再起) 무대’였다. 임기 중 안전기획부장이나 장관, 국회의원으로 빠져나가기 바빴다.

유일한 ‘민선 총재’였던 박용오 씨가 얼마 전 ‘두산그룹 형제 다툼’의 여파로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KBO에 다시 낙하산 바람이 불고 있다.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 내정설이 파다하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10년 선배로 노 정권 부산인맥의 장로로 꼽힌다. 3년 전 노 대통령 아들의 결혼식 주례도 섰다. 이쯤 되면 ‘낙하산이 아닌 이유’를 찾기가 힘들 것 같다. 더구나 그와 야구의 인연은 ‘부산상고에 야구팀이 있다’는 정도다.

야구계에선 역시 부산상고 출신인 김응룡 삼성야구단 사장이 막후에서 신 씨 추대를 돕고 있다는 얘기가 나돈다. 신 씨를 ‘연착륙’시키기 위한 정지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최근 롯데와 경찰청 야구단 감독에도 부산상고 출신이 발탁됐다. 부산상고 전성시대다.

KBO 총재는 8개 구단 사장으로 구성된 이사회의 추천과 구단주 총회의 의결로 선출된다. 그런데 정작 선출권을 갖고 있는 8개 구단은 아직 말이 없다. 사장들끼리 개인적으로 만나도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할 정도로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신 씨를 차기 총재로 미는 ‘낙하(落下) 강도’를 가늠하기 어려워 입장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따져 보자. 7년 전 문화관광부의 거듭된 반대에도 불구하고 ‘민선 총재’를 선택한 것은 프로야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공기업을 민영화해야 하는 이유와 다를 게 없었다. 이는 미국과 일본의 프로야구 성장사(史)가 이미 입증한 일이다.

KBO가 오늘 이사회를 열어 새 총재 추대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한다. 일부에선 ‘힘 있는 총재’가 나와야 야구계의 숙원인 돔구장을 건설할 수 있다는 실리론을 편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돔구장 건설에 굳이 도움을 받으려면 ‘정치적 거물’이 아니라 ‘경제적 거물’이 필요하다. 정치인 총재의 입김을 빌려 무언가 해결해 보려는 발상은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일이다.

송대근 논설위원 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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