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김인준]‘금융허브 전략’ 정부 직접개입 말아야

  • 입력 2005년 12월 1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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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우리 경제의 연평균 성장률이 4%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이다. 이처럼 경제성장률이 떨어진 이유는 우리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가계부채 증대에 따른 소비 지출 둔화, 중소기업의 어려움, 대기업의 신규 투자 저하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는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는 달리 서비스 부문의 생산성이 제조업에 비해서 70% 수준에 그치는 것도 그 원인이라 할 것이다.

중국과 인도가 고도성장을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장기적으로 제조업에서 금융, 교육, 건강, 의료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 위주로 산업구조를 바꿔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서비스 부문의 생산성이 낮다는 사실은 앞으로 우리의 잠재성장력을 높이는 데 그만큼 어려움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장기적 성장 잠재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금융 선진화와 동아시아 금융 허브 육성 전략이 꼭 필요하다. 지난주 서울에서 열린 ‘동북아 금융 허브’ 국제 세미나도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동아시아 금융 허브 육성을 위해서는 우리 금융의 현주소를 냉철히 파악하고 금융 허브 육성을 위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구축에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해외 투자가들을 위한 국제금융센터 터 선정과 배후 주거 및 교육 지역 선정 등은 하드웨어 구축에 해당한다. 이러한 하드웨어 구축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국민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금융 허브 육성은 참여정부뿐만 아니라 다음 정부로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하드웨어 구축보다 오히려 힘든 일은 도쿄, 상하이, 홍콩, 싱가포르 등에 맞설 만한 국제경쟁력을 가지는 소프트웨어를 구축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금융 분야는 아직 신흥 경제 수준이라는 비판이 있다. 최근 은행 등의 수익성이 좋아지고 있으나 이는 충분한 예대 마진 보장, 겸업화에 따른 수수료 수입 증대 등에 따른 결과이지 금융기관들의 국제경쟁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없다. 대형화된 금융지주회사도 수익의 80% 이상을 은행에 의존하며 대출 중에서도 가계대출이 50%를 상회하는 실정이다. 투자은행으로서의 역할과, 자산 운영과 관리 등으로 수익의 상당 부분을 창출하는 선진국형 수익 창출 모형과는 아직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금융 허브 육성은 두 단계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단계로 금융 부문의 경쟁력을 적어도 제조업 부문 수준으로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진한 금융 부문의 구조 개혁을 계속하고 규제를 풀며 주택 담보 대출과 카드 대출로 인해 가계 대출이 급증한 데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두 번째 단계로 도쿄, 상하이, 홍콩, 싱가포르 등에 필적할 만한 경쟁력을 갖추는 일이다. 금융과 정보기술(IT)의 결합, 동아시아 금융시장의 잠재력, 그리고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볼 때 우리도 충분히 이들 도시와 견줄 만할 장점이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경쟁력은 금융 부문의 개방과 경쟁, 전문 금융지식을 갖추고 영어는 물론 중국어나 일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훌륭한 금융인 양성 등을 통해서 얻어진다. 이와 더불어 법과 제도를 개선하고 완전 자본 자유화가 가져올 폐해에 대한 충분한 대비책도 세워야 할 것이다.

금융 허브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과거 런던이나 싱가포르의 국제금융도시화 과정에서 얻어진 교훈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교훈은 첫째로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을 피할 것, 둘째로 금융 부문의 경쟁과 혁신을 최대한 도모할 것, 그리고 국제 규범에 합당한 건전성 감독과 규제를 강화할 것 등이다.

김인준 서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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