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10년 덕수궁 석조전 완공

입력 2005-12-01 03:01수정 2009-10-0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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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덕수궁의 석조전(石造殿). 이 건물은 여러모로 이색적이다. 우선 우리나라 고궁에서 보기 어려운 서양식 건축물인 데다 그 앞에 분수대 정원이 있다는 점이 그렇다. 궁궐 전각의 이름이 대부분 심오한 뜻을 담고 있는 데 반해 이 건물은 그저 ‘돌로 지은 건물’이라는, 밋밋한 이름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석조전은 대한제국 황제의 집무 공간으로 쓰기 위해 지은 것이다. 대한제국의 재정고문역을 맡았던 영국인 J M 브라운의 발의에 의해 고종 황제 때인 1900년 공사에 들어가 국권을 상실한 뒤인 1910년 12월 1일 완공됐다. 18세기 유럽의 신고전주의풍 궁전 건축 양식을 본떠 지은 3층짜리 건물이다. 당시 기본 설계는 영국인 건축기사 G D 하딩이 맡았고 내부 설계는 로벨이라는 영국인이 담당했다.

대한제국은 원래 이 건물을 경희궁에 지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영국인 브라운의 주장에 의해 덕수궁으로 위치를 바꾸었다. 이와 관련해 영국이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대한제국에 입김을 넣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영국공사관은 덕수궁 바로 옆이었다. 고종의 집무실과 영국공사관이 서로 붙어 있게 된다면 영국으로선 더없이 좋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1905년 일본인 메가다(目賀田)가 대한제국의 재정고문이 되면서 석조전 건축의 주도권은 일본으로 넘어갔다. 이처럼 건축 과정에 외세가 깊이 개입하다 보니 전통적인 고궁의 분위기와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석조전은 1930년대 들어 일본 미술품의 전시 공간 및 ‘이왕가(李王家)’ 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 이왕가라는 말은 일제가 조선 왕실을 폄훼하기 위해 만들어낸 용어. 일제는 1938년 석조전 서쪽에 또 하나의 서양식 건물(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을 지어 한국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1946년 1월엔 한반도의 신탁통치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한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리는 등 석조전과 외세의 슬픈 인연은 계속됐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 궁중유물전시관 등으로 사용됐고 올해 8월 궁중유물전시관이 경복궁으로 옮겨감에 따라 지금은 미술관으로 꾸미기 위한 내부 수리 공사가 한창이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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