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정운]‘너나 잘하세요’의 심리학

  • 입력 2005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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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부에서 회의를 마치고 택시를 탔다. 50대 중반의 운전사는 내가 관공서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현실을 마구잡이로 개탄했다. 여야 구분이 없었다. 모두 다 ‘죽일 놈’이었다. 도로는 꽉 막혀 있었다. 내게 쉴 새 없이 동의를 구하는 그에게 서서히 짜증이 나기 시작할 때쯤 고급승용차 한 대가 깜빡이도 켜지 않고 갑자기 끼어들었다.

바로 그 순간부터 택시운전사와 나는 하나가 됐다. ‘우리’는 한국의 교통질서에 대해 침을 튀겨 가며 격분했다. 대낮에 할 일 없이 돌아다니는 ‘아줌마’나 외제차를 모는 ‘젊은 것’들을 욕할 때는 주먹으로 차 유리를 두드리기까지 했다. 그런데 아뿔싸. 이 개탄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우리의 택시운전사는 용감하게 버스전용차로로 들어가면서까지 차로를 바꿔 앞의 차들을 추월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우리’의 차로 위반은 시급한 사회경제적 현안에 비교하면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나는 빨리 학교에 도착해 한국 사회의 병리현상을 강의해야 했다.

늘 이런 식이다. 세상은 항상 잘못됐고 남들은 그렇게 무례할 수가 없다. 물론 내가 무례하거나 사소한 잘못을 범할 때도 아주 가끔은 있다. 그러나 이는 반드시 피치 못할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비난받아야 할 대상에서 나는 항상 제외된다.

대한민국 사람이 모두 나 같은 모양이다. 최근 발표된 통계청의 사회통계 조사 결과에 따르면 89.1%의 사람들이 자신은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74.6%가 남들은 장애인을 차별한다고 보고 있다. 또 조사대상의 64.3%가 자신은 법을 잘 지킨다고 답한 데 비해 다른 사람도 법을 잘 지키고 있다는 응답은 28%에 불과했다. 자신이 법을 지키지 않는 이유 중에는 “다른 사람이 지키지 않아서”라는 답이 25.1%로 가장 많았다. 이런 황당한 궤변으로 우리는 아주 자주 스스로를 변호한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의사소통 능력은 타인의 관점에서 사물을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관점획득(perspective taking)’이라고 부른다. 간단한 심리학 실험이 있다. 필통에서 연필을 빼고 사탕을 넣었다. 그리고 한 아이를 불러 묻는다. “이 안에 뭐가 들었을까?” 아이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연필요.” 심리학자는 필통 뚜껑을 열어 사탕이 들어 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필통 뚜껑을 다시 닫으며 물었다. “그런데 저 밖에 있는 친구에게 ‘이 안에 뭐가 들었니?’ 하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까?”

물론 연필이 정답이다. 정답을 알아맞히려면 상대방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능력이 필요하다. 만약 필통을 보고서 “사탕요”라고 대답한다면 자신의 관점과 타인의 관점이 다르다는 사실을 구분할 능력이 없다는 뜻이 된다. 최근 심리학 연구 결과들은 4세 아동이면 이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럼 마흔 중반의 내가 네 살짜리의 인지능력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 현상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모두가 파렴치한 정치인들 때문이다. 지역감정으로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그저 당리당략으로 권력을 얻을 생각만 하기 때문이다. 또 있다. 앞에서는 윤리경영이니 책임경영이니 하지만, 뒤로는 온갖 분식회계 정경유착을 서슴지 않는 경제인들 때문이기도 하다. 윤리와 가치를 강조하지만 스스로는 전혀 윤리적이지 못한 종교인들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혹시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주의 때문인가? 아! 연예인들의 불건전한 사생활 때문일 수도 있겠다.

좌우간…난 아니다.

김정운 명지대 교수·문화사회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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