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연구자들은 대북(對北) 지원책을 펴더라도 북한 정권과 주민을 구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고통받는 주민을 위한 정책을 펴야지 그렇지 않으면 특권층의 배만 불려 주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북한 정권이 그토록 보호하려고 애쓰는 특권층은 몇 명이나 될까. 농업이민 계획의 규모가 수백 명임을 감안할 때 ‘진짜 특권층’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일부 측근 등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그 ‘증거’가 최근 발간된 ‘신동아’ 10월호에 소개돼 관심을 끈다. 탈북한 전직 북한 관료가 폭로한 이른바 ‘심화조 사건’이다. 사회안전성이 주도한 심화조라는 전국조직이 김 위원장의 권력 강화를 위해 1997년부터 3년 동안 무려 2만5000명을 숙청했다는 것이다. 숙청 당한 인사들 중에는 중앙위원회 간부, 평안남도 책임비서 등 노동당 고위층이 즐비했다고 한다. 범죄 사실을 조작하기 위해 무자비한 고문과 처형을 자행했다니 북한 특권층의 지위란 것도 기실 허약하기 짝이 없는 것임을 보여 주는 예라고 하겠다.
▷김 위원장은 2000년 심화조에 대한 특권층 내부의 반발이 극심해지자 이번엔 심화조 주동자들을 내쳤다. 내부 세력끼리 대립하게 만들어 위험분자를 제거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만 ‘구원자’로 부각되는, 독재자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독재 통치가 언제까지 먹힐 수 있을지 의문이다.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1994년 이후로 대규모 숙청은 심화조 사건 외에도 수차례 있었다. 그런 일들을 온몸으로 겪은 북한 특권층의 인내심도 지금쯤이면 임계점에 도달해 있지 않을까.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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