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0년 전두환 대통령 취임

  • 입력 2005년 9월 1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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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모(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까지 결성됐다니 세상 참 희한하다.

이 모임은 2003년 가을 다음 카페에 개설됐으나 회원은 2000여 명에 불과했다. 그러다 갑자기 1만1700여 명으로 늘어났다.

난데없이 전사모가 뜬 이유는 MBC TV 드라마 ‘제5공화국’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애지중지하던 가발까지 벗어던진 채 전두환 역을 소화해 내고 있는 탤런트 이덕화 씨의 카리스마 연기가 시청자를 사로잡은 때문이다.

결국 전사모 회원 중 일부는 ‘이사모’이기도 한 셈. 최근에 가입한 회원 중에는 전사모란 게 있다고 하니까 게시판 글을 보기 위해 ‘위장 회원’이 된 경우도 제법 있을 것이다.

다양한 의견이 수용되는 민주화 사회에서 전사모가 생긴다고 굳이 흠 잡을 이유는 없을 터. 하지만 보스 기질로 똘똘 뭉친 전 씨에 대한 향수도 좋지만 그가 10·26사태 이후 정권을 찬탈한 과정은 역사가 이미 쿠데타로 심판을 내렸다는 엄연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1980년 9월 1일은 전 씨가 제11대 대통령에 취임한 날이다. 1979년 12월 12일 소장에서 9개월여 만에 두 계급이나 특진한 그는 8월 22일 대장으로 예편한 뒤 불과 닷새 만에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유신헌법하에서 단독 출마해 ‘거수기’로 불린 통일주체국민회의로부터 대권을 이양받는 일은 누워서 떡 먹기였다. 기권 1명을 제외한 2524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이 과정에서 김대중은 내란음모사건의 주모자로 구속됐고, 김영삼은 정계에서 은퇴했으며, 김종필은 부정축재자로 몰려 공직에서 사퇴했다. ‘3김 시대’는 막을 내렸고 ‘서울의 봄’은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광주의 피로 진혼제를 치러야 했다.

당시 미국의 지미 카터 행정부가 취임식장에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대사를 제외하고는 한 명의 축하 사절도 보내지 않은 것도 이와 전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취임식 다음 날 글라이스틴이 워싱턴에 올린 보고서 내용이 흥미롭다.

“한국 대통령 취임식 날 공식 행사는 매끄럽게 진행됐으나 축제 분위기는 없었음. 한국민들은 공휴일의 쾌청한 날씨를 만끽했고, 공원에는 인파가 북적였음. 그저 평소 햇볕 좋은 일요일을 즐기는 것 같은 분위기였음.” ‘서울의 봄’은 이렇게 사라져갔다.

장환수 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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