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연세·경희大 학생 ‘캠퍼스 自救’ 당연하다

  • 입력 2005년 8월 19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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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총학생회는 학교를 8·15민족대축전 행사장으로 개방한 데 대해 “어떤 명분이든 행사 유치를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을 지키지 않은 잘못을 반성한다”고 사과했다. 행사 주최 측인 통일연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등 운동권 단체는 14, 15일 연세대 캠퍼스를 일방적으로 사용하려다가 이 대학 총학생회, 교수협의회, 학교본부가 모두 반대하자 경희대로 장소를 옮겼다. 행사 뒤 경희대에서는 “캠퍼스가 쓰레기장이 되고 면학 분위기가 망가졌다”는 학생들의 비난이 잇따랐다.

경희대 총학생회는 사과문에서 “학우들을 먼저 생각하지 않은 데 대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뒤늦게나마 잘못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한 것은 상습적으로 ‘남 탓’만 하는 정치권보다 훨씬 성숙한 모습이다.

그런데 통일연대 등은 교내 행사 개최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연세대를 ‘폐쇄적, 보수적’이라고 비난했다니 어처구니없다. 연세대 총학생회가 “적절한 절차를 무시하고 과거의 투쟁방식을 지향한 이들 단체의 행동이야말로 폐쇄적이고 보수적”이라고 반박한 것은 당연하고 당당하다.

이제 대학 캠퍼스에 마구 들어가 집회장소로 쓰는 구태(舊態)는 사라질 때가 됐다. 공권력이 실종됐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집회의 자유가 방종 수준에 이른 요즈음이다. 합법적 집회의 자유가 있다면 대학인들에게는 ‘공부하고 연구할 권리’도 있다. 행사 때마다 강의실은 소주병과 담배꽁초로 가득 차고, 도서관은 구호와 고성방가에 시달린다. 이러니 대학생들이 스스로 학교를 지키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민족과 통일’만 앞세우면 무슨 일이나 할 수 있다는 행태는 터무니없다. 방학 중에도 학교 도서관에 나와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지적(知的) 역량’을 키우는 대학생들이 민족과 통일을 위해서도 더 소중하다. ‘민주화운동을 하는데 공부가 무슨 대수냐’던 386세대의 의식이 오늘날의 반(反)지성적 사회 풍토를 부채질하고, 정부를 지적 미숙아들의 실험장으로 만들었다.

연세대 총학생회는 “민주사회는 다원성(多元性)을 토대로 이뤄진다”고 했다. 틀린 말인가. 국가사회는 실력을 키우려고 애쓰는 대학생들을 보호해야 한다. 또 운동권 단체들은 대학과 세상이 변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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