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61년 소설가 계용묵 타계

  • 입력 2005년 8월 9일 04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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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롱이는 사고무친(四顧無親)에다 가난뱅이이고 외모까지 볼품없어 도무지 제 능력으로는 장가 한번 못가 볼 처지다. ‘백치 아다다’를 아내로 맞은 것은 자기 분수를 알았기 때문이다.

백치에 벙어리에다 소박데기이지만 김 초시의 딸 아닌가. 대대로 천품(賤品)인 자신에게 정을 주었으니 아다다와 결혼하는 그 자체가 신분 상승이요, 수족처럼 자신을 떠받드니 더 바랄 나위가 없다. 눈이 맞은 두 사람은 섬에서 살림을 차린다.

어느 날, 수롱은 아다다에게 뭉칫돈을 꺼낸다. ‘이것으로 밭 한 뙈기를 사 둘이 열심히 일구면 머지않아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서 살 수 있다’고 신나 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수롱이의 희망 앞에서 아다다는 절망한다.

아다다는 수롱이와 재혼이었다. 지참금을 들고 가긴 했지만 첫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행복했다. 그러다 모든 것이 바뀐 것은 남편이 대처에서 한밑천 잡고난 후부터. 남편은 딴살림을 차리더니 결국 아다다를 쫓아냈다. 아다다는 수롱이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돈이 없어도 좋다. 남편의 사랑만이 제일이다.’ 밭 주인에게 돈을 주기로 한 전날 새벽에 아다다는 돈다발을 바다에 뿌린다. 헐레벌떡 달려온 수롱이는 돈, 돈, 돈 하며 발을 동동 구른다. 그러다 마침내 돌아버린다. 아다다를 개 패듯 때리고 바다에 던져 버린 것이다.

소설가 계용묵(桂鎔默·1904∼1961)은 ‘백치 아다다’ 한 작품만으로도 한국문학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작가다. 이 작품은 순수와 욕망, 물질과 정신이라는 극단화된 인간상을 적나라하게 구현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초창기의 그는 식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작가답게 지주의 횡포를 견디다 못해 유민으로 전락한 소작인(‘최서방’)처럼 궁핍한 상황을 살아가는 하층민들의 삶을 비롯한 계급적 상황을 주로 다뤘다. 그러다 ‘백치 아다다’를 기점으로 거시적 상황이 아닌 섬세한 인간의 미시적 내면심리에 치중했다. ‘백치 아다다’가 시공을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조국은 광복을 맞고 물질은 풍요로워졌지만, 순수와 욕망의 갈등이라는 삶의 본질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다시 읽는 아다다의 순수가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세상인심이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다는 자각 때문이리라.

계용묵은 쉰일곱인 1961년 8월 9일 현대문학에 ‘설수집’을 연재하던 중 세상을 떠났다.

허문명 기자 ang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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