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오리발

  • 입력 2005년 7월 25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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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민다.’ 닭을 잡아먹었느냐는 추궁에 “아니, 오리 먹었다”며 오리발을 내민다는 얘기다. 닭 값이 오리 값보다 비쌀 때 생긴 말이다. 이제는 오리고기가 더 귀하고 값나가는 약용처럼 된 세상이다. ‘원인무효’가 됐으므로 말의 약발이 떨어져야 하겠지만 그 반대다. ‘오리발’은 여전히 정치권에서 ‘돈’의 은어로 통한다. 국어사전에도 살아 있다.

▷MBC는 지난 토요일 국가안전기획부의 ‘1997년 도청(盜聽) 문건’에 관해 보도했다. 그 속에는 당시의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이 “이회창 씨가 지구당 위원장 회의에 들어가기 직전 오리발 2개를 주었는데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 씨가 ‘오리발’을 뿌려서 당 장악에 성공했다는 얘기다.

▷‘오리발’이 정치권 용어가 된 데 대해서는 이런저런 설(說)이 있다. 불법자금이라 ‘시치미 떼고 주고받기 때문’이라는 설. 많이 받고도 조금 받은 것처럼 손을 내젓기 때문이라는 설. 받은 뒤, 추궁당하면 안 받았다고 잡아떼며 손사래 치기 때문이라는 설. 오리가 물밑에서 물갈퀴를 움직여 헤엄치듯이 돈이 정치이면(裏面)의 윤활유 또는 동력이기 때문이라는 설. 하지만 정설은 없다. 설들의 합(合)이 정설일까. 아무튼 오리발은 현금이 대부분이지만 수표로도 내려갔다. 5공화국 시절 여당 상층부가 내려준 수표를 ‘쌈짓돈’으로 챙겼다가 정보기관의 추적을 받아 창피당한 의원들도 있었다.

▷‘오리발 횡재’라는 것도 있다. 당선이 확실한 여당 실세(實勢)는 선거 때 축재(蓄財)의 기회를 맞는다. 5공의 군 출신 C 씨는 13대 총선 때 돈을 신나게 뿌리고도 헌금이 넘쳐 50억 원이나 남겼다. 그는 “선거 좀 자주 했으면 좋겠다”며 콧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낙선해도 ‘남는 장사’였던 후보들의 얘기는 역대 선거에서 끊이지 않았다. ‘오리발’이라는 말이 정경사(政經史)에서 사라지고 국어사전의 사어(死語) 또는 고어(古語)가 되는 날은 언제쯤 올까.

김충식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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