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1.19 쇼크]<7>가족 안에서의 양성평등

  • 입력 2005년 7월 5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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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이라고 모두 사회나 가정에서 남녀가 평등한 것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 일본 스페인 이탈리아는 가사와 육아 등 집안일을 여자가 맡아서 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출산율이 낮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왜일까.》

○ 집안일 담당자는 여성?

스페인 마드리드 교외에 있는 적십자사에 근무하는 아나 아르타사 히메네스(36) 씨.

“가족에 돌봐야 하는 사람이 생기면 늘 여자가 희생하죠. 남성이 집안일에 좀 더 적극적이면 여성이 직장을 그만둬 가면서 가족을 돌볼 필요가 없을 텐데요. 아이 때문에 손이 필요하면 남편보다는 이웃의 도움을 받아요.”


한국만큼이나 남성 중심적인 스페인도 변화할 조짐이다. 다음 달 중순 시행될 ‘결혼에 관한 새로운 법’이 부부의 가사활동 분담의무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드리드 지방자치주 블랑카 데 라 시에르바 이 데 오세스 가족국장은 “그런다고 남자가 안하던 집안일을 하겠느냐”며 “법적 강제보다는 남성의 감성에 호소하는 캠페인을 벌여 의식 전환을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아직까지도 여성의 수입활동과 관계없이 ‘양육과 가사를 주로 부인이 맡고 있다’는 응답이 기혼여성의 91.4%(‘2005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를 차지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회사원 남명희(가명·29) 씨의 동갑내기 남편은 결혼 초부터 입버릇처럼 말했다. “에이, 집안일은 여자가 알아서 하는 거지.”

남 씨는 “남편과 싸우는 것도 지쳐 이제 ‘내가 하지’ 하며 체념했다”며 “똑같이 돈 벌면서도 혼자 애 키우고 집안일 떠맡을 줄 알았더라면 임신부터 심각하게 고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남자와 ‘똑같이’ 돈 버는 요즘 젊은 여성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다. 출산이 가장 왕성해야 할 25∼29세 여성의 출산율이 2001년 이후 급격한 하락세다. 이 연령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2004년 63.7%로 1999년 52.1%에서 10%포인트 이상 급상승한 결과다.

LG경제연구원 이지평(李地平) 연구위원은 “선진국의 경우 1970년대 여성의 취업률이 늘자 곧바로 출산율이 하락했다”고 지적했다.

○ 딩크족을 듀크족으로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과 출산율 모두 상승세인 스웨덴은 남녀가 평등한 국가로 꼽힌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72년 당시 총리는 새로운 남성상을 보여 주기 위해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스웨덴에서 만난 기혼자들은 “부부가 집안일을 함께하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고 말했다.

“아내가 빨래할 때 저는 청소를 하고, 아내가 요리하면 전 설거지를 해요. 요리는 제가 아내보다 더 잘합니다(웃음). 유아학교에 아이를 맡기고 찾아오는 일도 반씩 나눠서 하죠.” (보건사회부 안데르스 이크홀름 계획조정국장·42)

프랑스에서도 ‘남자는 바깥일, 집안일은 여자 몫’이라는 공식이 없다.

금융회사 간부인 제롬 피노(40) 씨와 유치원 교사인 브리지트 피노(39) 씨 부부는 아이 넷을 키운다. 남편이 먼저 퇴근하는 날이면 유치원, 초등학교에 들러 아이를 찾아온다. 그런 날은 대개 시장도 남편이 본다. 식사 준비 역시 구별 없이 하고, 설거지는 대부분 함께하는 편이다.

박수미(朴秀美)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위원은 “선진국에서는 남녀 평등한 사회일수록 출산율이 높다”며 “가정 내 성평등이 출산율을 높이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도 딩크(DINK·Double Income No Kids)족보다 듀크(DEWK·Dual Employed with Kids)족이 많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스웨덴 양성평등정책위원회 게르트뤼드 오스트룀 특별조사관은 “가정 내 양성평등은 엄마와 아빠가 똑같이 아이를 돌보는 것”이라며 “집안일은 수입과 상관없는 것이므로 나눠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마드리드=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부부 중심 사회’가 출산율 높다▼

퀴즈 하나. 다음 중 어느 쪽의 출산율이 더 높을까.

①가족의 중심이 ‘부부’인 나라 ②가족의 중심이 ‘부모와 자식’인 나라.

자식을 귀하게 여기는 ②가 정답일 것 같지만 틀렸다. 답은 ①이다. 세계 공통된 현상이다.

한국은 두말할 것도 없이 ②에 해당된다. 부모는 ‘너무 중요한’ 자녀를 키우느라 다른 것을 포기하며 희생의 정도가 지나치게 크면 출산을 스스로 줄인다. 게다가 가족의 중심 기능이 자녀 양육이므로 ‘양육은 각 가정이 알아서 해야 한다’는 통념이 강하다.

4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인구학회 공동으로 열린 ‘제1회 저출산 시대의 인구정책에 관한 국제워크숍’에서 ‘한국 일본 미국의 혼인과 취업 및 가족생활’을 발표한 김민자(金敏子·미국 하와이 동서문제연구소) 박사는 세 나라의 차이를 ‘결혼 패키지’를 통해 설명했다.

김 박사에 따르면 결혼 패키지는 단순한 남녀의 결합을 뛰어넘어 결혼에 딸려오는 출산, 자녀양육, 가사부담, 시부모 모시기 같은 각종 의무를 가리키는 말. 이 부담이 클수록 위 퀴즈의 ②에, 부담이 작을수록 ①에 해당된다. ①에 해당되는 대표적 국가가 미국이다.

저출산 위기를 겪는 한국 일본과 달리 미국의 합계출산율은 현 인구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인 2.1명.

한국과 일본에서 결혼은 일생이 걸린 문제이고 결혼 패키지가 주는 부담이 여성에게 더 치명적이다. 반면 미국에서는 결혼 패키지의 부담이 적고 결혼이 영원하다는 사회적 인식도 낮으며 동거가 보편화돼 있다.

김 박사는 “결혼 패키지가 여성의 결혼과 출산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려면 가사노동에서 전통적인 성역할 의식이 양성 평등의 가치관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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