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신경숙]화이트칼라의 비애

  • 입력 2005년 5월 20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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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집안의 누군가가 은행에 다닌다고 하면 별 상관이 없는 먼 친척도 든든했다. 누가 이름 있는 기업에 취직하면 앞으로 밥 굶을 걱정은 없겠다며 축하했다. 그 마음의 기본은 평생직장을 얻은 사람에 대한 선망과 믿음이었다. 대기업의 신입사원이 되면 곧 그의 인생도 창창하게 느껴지고 이제는 결혼을 해도 되겠네, 경제력을 갖춘 독립된 성인으로 인정받는 일이기도 했다.

요 몇 년 사이에 사람들의 생각은 뒤바뀌었다. 우선 취직하기가 훨씬 더 힘들어졌지만 그걸 통과한 이를 바라보는 시선도 전과 같지 않다. 본인조차도 얼마나 버텨 낼 수 있을까? 은연중 생각한다. 누가 증권회사를 그만두고 빵집을 차린다고 하면 그럴 만한 특별한 사연이 있거나 빵집을 차리는 게 그 개인의 꿈이었거나 그도 저도 아니라면 상황을 잘못 판단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지금은 아니다. 일찍 자기 터전을 가꾸려는 비전 있는 사람으로 본다.

공무원도 회사원도 은행원도 훨씬 친절하고 세련되고 업무 처리도 정확해진 것 같은데 풀기 없이 사무적으로 보인다. 그곳이 평생 자기 직장이라는 의식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동남아 떠도는 직장 잃은 중년▼

언제 직장을 그만두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이 근래에 고질병처럼 퍼져 있다. 사회 요소요소에서 상상할 수 없는 사건들이 툭툭 터지는 이면에도 그 고질병의 영향이 섞여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평생직장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의 직장생활이란 인간 자체를 얼마나 삭막하게 할까. 불안과 경쟁이 팽배하는 장소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고독은 오늘날 화이트칼라들의 숙명으로 보인다.

네팔에 다녀온 사람에게서 들은 얘기.

외환위기 이후에 네팔뿐 아니라 인도 티베트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지역을 장기적으로 떠도는 한국 사람들 중 대부분이 중년이라고 했다. 중년들이? ‘배낭 여행자들은 대부분 젊은 축이겠지’ 싶었던 나의 예상을 뒤엎는 말에 귀 기울였다. 그들은 대부분 조기 퇴직했거나 직장에서 밀려난 화이트칼라들이란다. 한번 직장에서 밀려난 후 다시 직장을 찾지 못했거나 이후 창업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람들. 여행자로서가 아니라 호구지책으로 떠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 달에 30만 원쯤으로 버틸 수 있는 곳을 찾아간다고 한다. 300만 원 남짓한 돈으로 1년은 살 수 있다는 계산을 한다고 들었다.

한국에선 그 나이에 그 돈으로 한 달 생활하기가 불가능하지만 그 지역에선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재취업이나 창업에 실패하고 최소한의 돈을 마련해 떠도는 삶을 택한 셈이다.

이것도 삶의 한 방법이긴 하겠으나 자발적으로 떠난 게 아니라 떠날 수밖에 없어서 떠도는 중년들의 얘기가 마음을 씁쓸하게 했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은 이제 고사성어가 되었다. 직장이 흔들리면 연쇄적으로 가정이 흔들리고 가족도 흩어져 기본체계가 엎어지는 일이니 심각한 일이다. 평생직장이라는 말 대신 높은 이직률, 고실업 파산 등이 화이트칼라 앞에 붙어 다닌다. 솔직히 고실업자들이 흔한 시대에 살다 보니 이제 누가 직장을 퇴직했다 해도 크게 놀라지 않는다. 이게 정상으로 받아들여져선 곤란한데 현실이 그렇다.

▼집에서도 심리적 외톨이 신세▼

직장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안전한가. 인원 감축으로 바뀐 업무환경에 적응하다 보면 낮과 밤이 없이 일벌레로 생존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일벌레를 좋아할 사람은 없다. 업무에 치중하다 보면 가족을 향해 웃어 줄 시간도 마음도 일지 않아 가족 구성원 안에서도 점점 심리적 외톨이가 된다.

네팔 티베트 인도 등지를 떠도는 중년 남성들은 얼마간 그렇게 지내다 보면 ‘명상가’ 내지 ‘구도자’연하는 포즈를 취하게 된다고 한다. 고도 산업사회를 향해 달려 온 한국 사회가 예기치 않게 생산해 낸 이들을 떠올리면 이상하게 허허로워지면서 마음 한편이 아려 온다.

신경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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