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상수]高大 극소수 학생의 ‘안타까운 脫線’

  • 입력 2005년 5월 3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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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5시 20분경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인촌기념관. 이건희(李健熙) 삼성그룹 회장이 명예철학박사 학위 수여식장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인촌기념관 입구는 갑자기 아수라장이 됐다.

“노조 없는 삼성의 이 회장은 대표적인 노동 탄압 인물”이라고 주장하면서 피켓 시위를 벌이던 ‘다함께 고대모임’이란 좌파 성향 모임 학생 60여 명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이 회장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경호원과 취재기자들, 학생들이 한데 엉킨 가운데 이 회장은 간신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양복은 구겨졌고 얼굴은 창백했다.

학생들은 아주 거칠었다. 닫힌 철제 셔터를 부수려고 안간힘을 썼고 아우성과 욕설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3층 이사장실로 대피하듯 올라간 이 회장을 보호하기 위해 50여 명의 삼성 계열사 사장단이 건물 안 출입문과 계단을 둘러쌌다. “이거 뭐야.” “경찰 불러!” “막아!”…. 다급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외부와 단절된 이후 100분이 그렇게 지나갔다. 건물 안에 ‘갇힌’ 이 회장이나 박용성(朴容晟)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50여 명의 삼성 사장단은 분(分) 단위로 시간을 관리하는 기업인이었지만 외부와 단절된 시상식장 안에선 그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과 함께 안에 갇혀 있던 기자는 재계 인사들의 표정에서 당혹감과 분노를 읽을 수 있었다.

오후 7시. 이 회장은 시상식장이 아닌 3층 이사장실에서 약식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지하의 비상구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갔다. 한 삼성 관계자는 “해도 너무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박사학위 준다고 해도 안 받았는데…”라며 당혹스러워 했다.

이날 소동을 일으킨 60여 명의 학생은 고려대를 대표하는 학생들은 아니다. 하지만 극소수 학생의 잘못된 행동은 100년의 역사를 가진 모교의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

한국 사회 일각에는 특정 집단이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한 것이라면 어떤 수단도 용인된다는 잘못된 풍조가 있다. 소동을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다른 사람을 존중할 줄 아는 ‘열린 사고(思考)’와 거리가 먼 일부 젊은이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김상수 경제부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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