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45년 히틀러 자살

  • 입력 2005년 4월 29일 1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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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사실주의적’이라고 평가되는 올리버 히르쉬비겔 감독의 영화 ‘몰락’(2004년)은 아돌프 히틀러의 마지막 날인 1945년 4월 30일을 현장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라 꼼꼼히 묘사하고 있다. 전날 정부(情婦) 에바 브라운과 결혼식을 올린 히틀러는 장군과 비서들이 도열한 가운데 한 사람씩 손을 굳게 잡으며 작별인사를 한다. 그가 브라운과 개인집무실로 모습을 감춘 직후, 나치 독일의 선전상 요제프 괴벨스의 부인이 들이닥쳐 “총통을 만나게 해 주세요”라며 울부짖는다.

문을 연 히틀러는 자신의 발아래 고꾸라져 ‘제발 베를린을 떠나 달라’고 읍소하는 여인에게 나지막이 내뱉는다.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다시 문이 닫히고 한 발의 총성이 울린다. 근처 계단에 앉아 있던 괴벨스의 어린 아들이 반사적으로 ‘명중!’이라고 외친다. 병사들은 머리에 총을 쏜 히틀러와 독약 앰풀을 삼킨 브라운의 시신을 미리 파둔 구덩이에 옮긴 뒤 석유를 붓고 불을 붙인다.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 앞에서 몇 명의 병사와 장군들이 손을 들어 ‘히틀러식 경례’를 붙인다….

이 영화에는 히틀러의 측근들이 ‘연합군과 강화(講和)해 국민들의 목숨을 보전하자’고 진언하는 모습이 거듭 등장한다. 그러나 ‘총통’은 “패배한 민족은 멸망이 당연해. 생명력 넘치는 동방의 민족이 우리를 대신하게 될 거요”라고 내뱉는다.

독일 역사학자 요아힘 페스트는 히틀러가 ‘승리의 의지’를 빼앗긴 뒤 맹렬한 ‘멸망의 의지’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분석한다. 그가 사랑한 바그너의 음악극 ‘신들의 황혼’에서 천상의 발할라 성(城)이 불길에 타오르듯, 철저히 파괴되어 장엄하기까지 한 몰락을 원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라진 히틀러였지만 그 뒤 수십 년 동안이나 ‘생존설’이 그치지 않고 떠돌았다. ‘서방과의 단독강화를 포기하는 대가로 소련에 건너가 조용히 살다 1971년 사망했다’, ‘성형수술을 받은 뒤 남미로 날아가 농장주로 지냈다’…. 그러나 소련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50년대 후반 귀환한 히틀러의 주치의들은 “소련군 관계자가 불에 탄 중년 남자의 이빨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틀림없이 히틀러의 치열(齒列)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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