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92년 맥도널드 중국진출

  • 입력 2005년 4월 23일 00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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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새해 벽두 88세의 덩샤오핑(鄧小平)은 노구를 이끌고 우창(武昌) 선전(深(수,천)) 상하이(上海) 등지를 시찰했다. 생애 마지막이었던 이 순방에서 그는 중국인들을 향해 전면적 각성을 촉구했다.

당시 중국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방향타를 상실한 채 극심한 혼돈에 빠져 있었다. 자오쯔양(趙紫陽)은 실각했고 이어 들어선 장쩌민(江澤民) 체제는 속 시원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이에 은퇴한 노 정치가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중국의 개혁 개방 정책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고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도입 의지를 담은 이른바 ‘남순강화(南巡講話)’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맥도널드(중국명 마이당라오·麥當勞)가 얼마 후인 4월 23일 베이징에 상륙한 것은 이런 격동의 소용돌이 속에서였다.

매일 전 세계 4300만 명이 찾는 업소, 연인원 100만 명을 고용하는 거대 기업, 1000억 개 이상의 햄버거를 판 다국적 회사. 미국의 사회학자 벤저민 바버가 총칼보다 더 강력한 패스트푸드 문화인 ‘맥 월드(Mcworld)’라고 지칭한 햄버거는 이렇게 중국에 들어왔다.

세계 어디서나 그랬던 것처럼 맥도널드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13억 중국인을 공략했다. 포크와 나이프가 필요 없고, 숙련된 조리사가 아니라도 누구나 10분 안에 만들 수 있으며, 자동차 안에서도 주문하고 먹을 수 있는 값싼 음식. 365일 운영하고 지역별로 특화 메뉴가 있긴 하지만 어디서나 똑같은 맛을 제공하는 엄격한 품질관리, 그리고 청결한 매장은 서구문물에 눈을 뜨기 시작한 중국 젊은이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맥도널드는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미국프로농구(NBA)에 진출한 중국의 미남 센터 야오밍에게 거액을 주고 광고모델로 쓰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이 그렇게 만만한 곳은 아닐 터. 1999년 미국 공군기가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대사관을 오폭했을 때 베이징에서 가장 먼저 습격을 당한 곳은 미국 대사관이 아닌 10여 개의 맥도널드 매장이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톈안먼 광장 마오쩌둥 기념당의 오성홍기(五星紅旗)와 근처 맥도널드의 간판이 묘한 대조를 이루는 곳. 시장경제를 둘러싼 중국과 미국의 힘겨루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형이다.

장환수 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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