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영언]사진 속의 朴대표

  • 입력 2005년 3월 10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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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머리 스타일이 달라졌다. 올린 머리를 풀고 뒷머리를 늘어뜨려 파마한 모습이 새롭다. 박 대표는 “사람들이 하도 바꿔 보라 해서”라고 말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바꿨으면 하는 게 그뿐일까.

신문에 실리는 박 대표의 사진에는 공통점이 있다. 누군가와 소곤거리거나 얘기를 듣고 있는 모습이 많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당사 회의실에서, 또 다른 자리에서도 옆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는 장면이 자주 포착된다. 상황을 주도하는 리더라기보다는 결정을 기다리는 구성원의 표정 같다. 한 사진기자는 “솔직히 그런 구도 말고는 별로 찍을 게 없다”고 전한다.

정치 지도자의 이런 모습에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말을 독점하는 리더들을 많이 보아 온 탓에 남의 얘기를 주로 듣는 듯한 자세가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서지 않으면서 예의 바르고 부드러운 박 대표 특유의 이미지가 국민의 호감을 사는 데 한몫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경청(傾聽)의 리더십’이란 말도 있다.

하지만 보기 좋은 그림도 한두 번이다. 이런 장면이 주로 비치면서 야당 지도자로서 카리스마나 적극성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심어 주는 측면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이 제1 야당 구실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는 데는 박 대표의 이런 소극적 리더십 탓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당 안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것이 민주정당의 모습이다. 특히 민정계, 민주계, 재야 민중당계, 전문가 집단 등 다양한 성향에다 구성원 간의 세대차와 지역의 벽도 커 보이는 한나라당에서 온갖 의견이 부닥치는 건 필연이라 할 만하다.

이런 가운데서도 가닥을 치고 줄거리를 잡아 대세를 이끄는 것이 지도자의 역량이다. 아쉽게도 박 대표에게선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일 텐데 손에 든 구슬마저 놓치고 있는 것만 같다. 오늘 치러지는 원내대표 경선만 해도 일부의 반발로 반쪽으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오죽하면 “한나라당은 이제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정당이 됐다”는 푸념까지 나올까.

제1 야당 지도자라면 차기 대통령감으로서의 무게가 느껴져야 한다. 그러자면 부드러우면서도 때로는 당차고 야무져야 한다. 국정 현안에 대한 뚜렷한 소신과 구심력이 있어야 한다. 이미지보다 콘텐츠가 중요한 이유다. 그것은 암기된 지식이 아니라 소화된 지식이어야 한다. 결정을 내릴 땐 단호해야 한다. 필요할 땐 정부와 여당에 대한 당의 전투력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박 대표가 흔들릴 때마다 DJ와 YS가 생각난다. 그들은 야당 대표시절 불과 수십 명의 의원들로 정국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당시 신문엔 지시하고, 결정하고, 때로는 호통도 치는 그들의 사진이 자주 실렸다. 세상이 한참 달라진 판에 이미 현실정치를 떠난 그들의 야당 지도자 시절을 떠올리는 건 뜬금없는 일일까. 하지만 머리스타일뿐 아니라 리더십의 콘텐츠까지 달라진 박 대표를 보고 싶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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