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류중석]‘행정도시 이후’ 수도권 청사진 필요

  • 입력 2005년 3월 4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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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도시특별법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그 뒷맛은 지난번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처리 때와 마찬가지로 개운치 못하다. 여야의 합의를 거치긴 했지만 야당 내부의 반대 목소리를 아우르지 못했고, 처리 과정도 직권상정이라는 매끄럽지 못한 방법을 취했다. 일부 야당의원은 당직을 사퇴했고, 수도권의 지방자치단체장들은 또다시 헌법소원을 내겠다고 한다.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의 앞길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이번 특별법은 위헌 논란을 피하면서도 지역균형발전과 수도권 과밀해소를 달성하기 위한 일종의 고육책이다. 외교 안보기능을 서울에 남기고 경제관련 부처를 중심으로 한 12부 4처 2청 및 산하기관을 충남 연기-공주 지역으로 이전하여 상징적 대외적 수도와 실질적 행정적 수도로 나누는 방안이다. 노무현 정부의 신행정수도 건설정책은 강도 높은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논의의 초점은 어떻게 지역균형발전과 수도권의 과밀해소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논의는 여전히 이 특별법이 위헌인가 아닌가, 그리고 수도를 둘로 쪼개는 것인가 아닌가에 집중되고 있어 안타깝다.

현재의 논란은 다음 몇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이번 법안이 여전히 위헌소지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미 과천과 대전의 정부청사 건립을 통해 정부 기능을 분산시킨 바 있다. 또 행정부처 이전이 정부의 행정재량권의 범위에 속한다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주된 의견이다. 이제는 위헌소송으로 국력을 낭비하기보다는 어떻게 수도권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할 것인가에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둘째, 행정중심복합도시가 사실상 수도를 둘로 쪼개는 망국적 행위로 오히려 수도 이전보다 더 나쁘다는 주장이다. 물론 행정 기능이 분산되면 다소간의 능률저하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도권의 과밀과 지역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면 어느 정도의 능률저하는 불가피하다는 생각이다. 또한 정보통신 선진국인 우리의 여건으로 볼 때 이런 불편과 능률저하는 첨단 정보통신 기술로 상당부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선진국에서 행정 기능의 분산을 통해 도시경쟁력을 높인 성공적인 사례를 면밀히 검토해 귀감으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셋째, 이전하는 부처 소속 공무원들이 연기-공주에 정착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파급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사실 행정 기능의 이전만으로 지역균형발전이 성공할 것으로 믿는 전문가는 없다. 법안에 담겨 있는 것처럼 행정중심복합도시는 자족도시이면서 친환경도시로 건설되어야 한다. 교육 문화 정보 등 생활의 편리함과 쾌적성을 함께 갖춘 제대로 된 도시를 건설해 공무원들의 정착을 유도해야 한다.

행정중심복합도시만 잘 건설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혁신도시 건설 등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 패키지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야 한다. 행정중심복합도시는 이러한 정책 패키지 가운데 한 요소로 이해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우리가 겪은 혼란과 논쟁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정부는 앞으로 정책추진 과정에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선 신행정수도 반대의 주된 이유 중 하나였던 ‘수도권의 경쟁력 약화’를 막기 위한 확실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섣부른 수도권 규제완화 목소리는 경계해야 한다. 행정 기능 이전으로 인한 공백을 메우려다가 수도권이 오히려 더 과밀화되고 경쟁력이 약화되는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행정도시의 지위에 관한 별도 법률을 속히 제정하여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정비해야 한다.

하나의 신도시가 건설되어 안정되기까지는 최소 15년이 걸린다. 늦었다고 서두르지 말고 국민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고 야당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 더 이상의 국력 낭비가 없도록 하기 바란다.

류중석 중앙대 교수·도시설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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