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종석]경제정책 우선순위 밝혀야

  • 입력 2004년 12월 6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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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가구 3주택의 양도소득세 중과세 시행 시기를 놓고 표출된 이헌재 경제부총리와 이정우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의 견해차는 특정 사안에 대한 일과성 사건이 아니라 정부 여당의 경제팀 내부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코드 불일치의 결과로 보인다.

얼마 전에도 이 부총리는 여당 내 운동권 출신 젊은 의원들의 이념 성향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적이 있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비행기에 조종사가 둘인데 서로 다른 방향으로 조종하면 제대로 날 리가 없다. 한 나라의 경제를 조종하는 것은 배나 비행기를 모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고도의 기술과 경험이 필요한 일이다.

▼성장-분배놓고 경제팀 불협화음▼

국민을 잘살게 해 주겠다는 뜨거운 마음이나 세상을 바꾸겠다는 운동권 논리만으로 경제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경제정책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서부터 정책수단의 선택, 정책의 집행까지 단계마다 고도의 전문성과 경륜이 필요한 과학이다. 그러면서도 투자자와 소비자를 상대로 한 고도의 심리전도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정책은 다른 어느 정책보다도 의사결정구조가 효율적이고 분명해야 한다. 경제정책의 수립과 집행에 여러 사람이 참여하고 다양한 목소리가 수렴되는 것은 필요하지만 권한과 책임은 명확해야 한다.

경제정책에서는 견제와 균형이 반드시 미덕은 아니다. 권한과 책임이 분리되면 어느 조직이나 의사결정에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경제정책이 특히 그렇다. 경제정책에 관한 권한과 책임을 명확하게 해 줄 사람은 오직 대통령뿐이다. 대통령의 경제 참모와 경제부총리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경제정책은 일자리 창출이든 물가 안정이든, 성장이든 분배든, 정책 방향이 일단 정해지면 일관되게 일정 기간 추진해야 효과가 나타난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를 놓고 계속 우왕좌왕하면 오히려 뒤로 가는 것이 경제다. 현 정부 들어 성장이냐 분배냐를 놓고 정책의 우선순위 없이 우왕좌왕한 결과가 바로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경기 침체와 분배 악화다.

국내외적으로 경제개혁과 경제성장에 성공한 정부의 공통점은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유능한 경제팀을 발탁해서 이들이 정치적 고려와 이익집단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게 오직 경제원리에 입각해 일관된 경제정책 노선을 유지할 수 있도록 확실하게 밀어 주었다는 점이다. 경제부총리든 대통령의 참모든 대통령이 신임하는 사람 하나를 지명해서 이 사람이 사실상 경제대통령 노릇을 하도록 경제를 맡기고 확고하게 밀어 주어야 한다.

경기회복은 부총리가, 부동산 정책은 대통령의 참모가 맡는 식의 분업은 경제정책에 관한 한 효율적이 아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직접 현 정부의 경제정책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리해야 한다. 경제성장도 중요하지만 개혁도 중요하다든가, 경쟁력도 중요하지만 분배도 중요하다든가, 기업하기 좋게 해 주겠다면서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식의 양다리 걸치기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여당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부는 투자 촉진 정책을 추진하는데 여당은 오히려 투자를 저해하는 입법을 추진하는 것과 같은 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개혁이든 성장이든 이제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분명한 노선을 정하고 한국 경제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지 국민에게 말해야 한다.

▼‘경제대통령’ 지명해 맡겨야▼

개혁과 성장은 양립할 수 있다거나, 개혁을 해야 성장이 지속된다든가 하는 논리는 더 이상 시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경제활동의 불확실성만 증가시킬 뿐이다. 정권 핵심이 생각하는 ‘개혁’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은 국내외 투자자들과 기업인들이 이미 잘 알고 있다. 이번에 드러난 정권 내부의 경제정책 노선 논쟁은 대통령에게 더 미룰 수 없는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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