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 비상구가 없다]<3>프랜차이즈 ‘한탕주의’

  • 입력 2004년 11월 30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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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 침체가 이어지는 요즘 ‘프랜차이즈 창업 박람회’에는 전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몰린다. 프랜차이즈 산업 규모는 급속도로 커지고 있지만 이에 걸맞은 경영관리 시스템은 아직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동아일보 자료사진
내수 침체가 이어지는 요즘 ‘프랜차이즈 창업 박람회’에는 전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몰린다. 프랜차이즈 산업 규모는 급속도로 커지고 있지만 이에 걸맞은 경영관리 시스템은 아직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동아일보 자료사진
《1979년 롯데리아가 도입해 국내에 첫 선을 보인 프랜차이즈. 수만 보면 한국은 20여년 만에 ‘프랜차이즈 선진국’이 됐다. 프랜차이즈 수만 해도 1600개로 설립 역사가 150년이 넘는 미국(1500개)보다 많다. 국내 프랜차이즈 시장규모도 45조원(2002년 말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의 7.6%를 차지해 일본(3.3%)보다 높다. 12만개의 가맹점에서 일하는 종업원 수도 57만명이나 된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한국의 프랜차이즈 산업은 ‘외화내빈(外華內貧)’이다. 우선 ‘프랜차이즈 가입이 가장 안전한 창업’이라는 명제가 한국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한탕주의 실태▼

대기업에서 명예퇴직한 박모씨(42)는 작년 초 서울 강남에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냈다. 시가보다 세 배나 비싼 평당 150만원을 본사에 주고 인테리어 공사(40평)를 했다. 그러나 개업 두 달 만에 냉난방 배선이 고장 났고, 천장에서는 물이 샜다. 본사에서 주는 재료 역시 도매시장에서 직접 사는 것보다 50% 이상 비싸다는 것도 뒤늦게 알게 됐다.

본사에 항의했지만 “고유한 디자인이어서 인테리어 공사비가 많이 들고 재료도 좋은 걸 쓰기 때문에 비싸다”는 퉁명스러운 대답만 들었다.

박씨는 그래도 나은 경우. 경기 안양시 평촌역 B치킨점을 운영 중인 한모 사장(41)이 본사에서 ‘전수’받은 것은 창업교육 때 3일간 닭 튀기는 방법밖에 없다.

일부 악덕 프랜차이즈업자들은 가맹 점포 모집을 상가 분양이나 ‘일회용 상품 판매’ 정도로 여긴다.

강병오 FC창업코리아 대표는 “프랜차이즈업이 발전하려면 본부와 가맹점이 ‘장기적인 동반자 관계’를 맺고 서로 상생해야 한다”며 “그러나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영세 프랜차이즈업자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 마구잡이로 가맹점을 모집하면서 시장질서가 파괴됐다”고 지적했다.

▼전략없는 경영▼

프랜차이즈는 가맹 점포가 사업본부의 브랜드와 경영 노하우를 로열티를 지불하고 사용하는 계약을 해 사업을 운영하는 방식. 따라서 프랜차이즈는 대부분 소규모 자영업 성공→직영점 확대→성공 노하우 축적 및 매뉴얼화→프랜차이즈 전환이라는 순서를 밟는다.

그러나 국내 상당수 프랜차이즈는 이런 과정을 밟지 않거나 너무 서두르면서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또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증된 사업이 프랜차이즈로 전환되기보다는 유행에 따라 창업이 이루어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닭고깃집. 현재 닭과 관련한 프랜차이즈는 종류만 30여개나 된다. ‘프라이드 치킨’을 제외하고도 최근 3∼4년간 양념구이, 전기구이, 마늘닭, 찜닭, 매운닭, ‘테이크아웃 전용 닭’ 프랜차이즈 등이 생겨났다. 이 밖에 조개구이, 생과일전문점, 유기농 아이스크림점 등이 선보였고, 비 외식업종에서도 디지털 사진숍, 휴대전화 장식 전문점, 게임전문PC방 등이 등장했다.

특정 업종의 프랜차이즈가 단기간에 과잉 공급이 되다 보니 창업 1년도 안 돼 문을 닫은 가맹점이 부지기수다.

프랜차이즈협회가 2002년 12월 말 프랜차이즈 700여개를 조사한 결과 가맹 점포의 사업지속기간은 1∼3년이 77%나 됐다. 반면 5년 이상 되는 점포는 21%에 불과했다.

▼업계 自淨노력▼

현재 국내에서 10년 이상 안정적으로 운영된 프랜차이즈는 30여 곳에 불과하다. 이들은 ‘KFC’ ‘배스킨라빈스’ ‘던킨 도너츠’ ‘피자헛’ 등 해외 유명 프랜차이즈와 ‘롯데리아’ ‘놀부’ ‘BBQ 치킨’ ‘알파문구점’ 등 국내파 프랜차이즈로 나뉜다.

이들이 몇 차례의 불경기를 이겨내고 자리를 잡은 것은 특유의 경영 시스템을 정착시키고 본사와 가맹점이 ‘윈-윈(Win-Win)’하는 문화를 정착시켰기 때문. 또 단기 승부보다는 철저하게 브랜드 관리를 하면서 장기적인 관점으로 사업을 이어 나갔다. 경영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가맹점을 주지 않을 정도로 가맹점 관리도 신경을 썼다.

미약하지만 희망적인 움직임도 있다. 최근 설립되는 업체들은 ‘초단기 승부가 오히려 독(毒)이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선도적인 업체의 경영 시스템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업계 스스로 ‘옥석(玉石)’을 가려내려는 자정(自淨) 움직임도 있다.

전국신용보증재단연합회는 이달 중순부터 프랜차이즈협회와 공동으로 ‘우수 프랜차이즈’를 선정해 가맹점주가 대출을 원할 때 대출금액의 85∼100%에 해당하는 금액에 대해 신용보증을 서 주기로 했다.

프랜차이즈 경제인협회 김재욱 부회장은 “미국 프랜차이즈협회처럼 국내 회원사들이 공동으로 ‘진입 장벽’을 조성해 과당경쟁이 우려되지 않는 장소와 업종으로 창업을 유도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경영능력을 갖춘 사업자들만 가맹 점포를 창업할 수 있도록 하는 ‘프랜차이즈 인증제도’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이병기기자 eye@donga.com

김상훈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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