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JP "이젠 정치를 떠날 때가 된 것 같다."

  • 입력 2004년 4월 16일 17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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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지난 15일 오후 마포당사에서 투표종료와 함께 발표된 방송사 출구예측조사 결과를 지켜본뒤 실망한 표정으로 당사를 나서고 있다.[연합]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지난 15일 오후 마포당사에서 투표종료와 함께 발표된 방송사 출구예측조사 결과를 지켜본뒤 실망한 표정으로 당사를 나서고 있다.[연합]
"이젠 정치를 떠날 때가 된 것 같다."

17대 총선에서 자민련 원내교섭단체 진입과 자신의 '10선 고지' 등정 등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실패한 김종필(金鍾泌) 총재는 16일 몇몇 측근들과 만나 "한계를 느낀다. 인과응보라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1961년 35세의 젊은 나이로 처삼촌인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5·16 군사 쿠데타'에 가담, 한국 정치사의 전면에 화려하게 등장한 JP가 43년의 영욕 끝에 쓸쓸히 '퇴장'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78세의 그는 "요즘도 라운딩 할 때 세컨드 샷을 치면 한 200야드는 나간다"며 건강을 자랑하지만, 3김 시대의 종말과 새로운 리더십 창출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역류하는 데는 힘이 부치는 듯하다.

JP에 대해서는 훼예포폄(毁譽褒貶 : 헐뜯고 칭찬하고 나무라는 말. 시비선악을 꾸짖어 평정함)이 교차한다. 군사독재의 2인자, 혹은 지역 정당의 맹주로서 한국 정치사를 왜곡시켰다는 부정적 평가와 함께 '미학의 정치인'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또 그의 강점이면서도 국민들을 식상케 한 요인은 지독하리만큼 '끈질긴 생명력'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 같다.

5공 시절 정치규제, 87년 대선 출마, 90년 3당 합당과 민자당 탈당, 자민련 창당 후 15대 총선에서의 50석 확보, 97년 'DJP' 공조 및 파기, 16대 총선 참패 등의 풍상을 겪으면서도 정치권의 한 축을 이뤄왔다.

그를 지탱해 준 원동력은 충청이라는 텃밭이었다. 그러나 충청은 이번 총선에서 그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정당 득표율에서 자민련은 대전 14.5%, 충남 23.8%, 충북 6.3%를 얻는 데 그쳤다.

자민련의 한 당직자는 "탄핵 후 폭풍과 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겹쳐 고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민련이 변화의 흐름에 부응하지 못한 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자업자득이다"고 말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그는 정계은퇴의 배수진을 쳐야 한다는 당 일각의 요구를 받았으나 일축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총선 기간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비례대표 1번으로 10선을 노리는 것은 욕심 아니냐"는 지적에 "나는 비례대표 6번을 달라고 했는데 당에서 1번을 줬다"고 했다.

레바논 태생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칼릴 지브란은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했던가. JP 자신의 말 대로 서산을 붉게 물들이지 못한 채 '강제 퇴출'되는 뒷모습이 아쉽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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