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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1월 11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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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은 한가하게 권력무상을 논할 계제(階梯)가 아니다. 지난 주말 정 의원을 비롯한 8명의 현역 국회의원에 대해 구속영장이 무더기로 청구됐고 그 가운데 6명이 잇따라 구속된 사태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로서, 갈 데까지 간 대한민국 국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웅변하고 있다.
▼議員무더기 구속 ‘국민의 치욕’▼
그 가운데는 전형적인 ‘정치범’도 있고 형편없는 ‘잡범’도 있다. 가령 불법 대선자금 모집이 전자에 해당된다면 공금횡령이나 뇌물수수와 같은 범법행위는 후자의 경우다. 지금 와서 이들간에 옥석을 가리자는 항변이나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불만은 국민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지난 연말 이들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일괄 부결시켰던 국회가 국민적 공분을 자초한 상황에서 이번에 검찰이 방탄국회가 끝나자마자 소정의 법 집행을 강행한 것은 결코 여론이나 민의에 벗어난 일이 아니다.
게다가 같은 날 의원직을 사퇴한 민주당 김운용 의원 또한 조만간 사법처리를 기다리는 처지가 됨으로써 대한민국 국회는 가위(可謂) ‘치욕의 금요일’을 겪은 셈이다.
국회의 치욕은 곧 국민의 치욕이다. 따라서 이번 봄에 있을 신구(新舊) 국회 교체를 앞두고 특단의 노력을 경주하지 않을 수 없다. 현역 의원들이 스스로 도덕적 재무장을 꾀한다는 것은 아예 꿈도 꾸지 말자. 문제를 푸는 열쇠는 역시 제도와 관행을 바꿔주는 것뿐이다.
이를 위해 오는 총선은 무엇보다 국회를 전문가 집단으로 탈바꿈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한국정치의 질적 도약을 위한 기본 동력은 ‘정치 브로커’ 자리를 ‘정책 프로페셔널’이 채우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따라서 각종 정치개혁 논의에서부터 정당의 공천 작업, 그리고 유권자의 실제 투표에 이르기까지 초점은 지역주의 타파나 세대교체 수준이 아니라 정치 개념 자체의 근본적 변화에 맞춰져야 한다.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국회는 자신의 입법능력은 물론 대외적 권위까지 한꺼번에 제고할 수 있다. 전문가 집단의 일반적 특징 중에는 외부통제와 간섭을 사양하고 차단할 수 있는 자기정화(淨化)의 힘이 있다. 우선 전문가라면 인격적 자기기율을 일종의 직업적 자존심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만약 이와 같은 개인윤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는 조직 내부의 통제 메커니즘이 강도 높게 발동한다. 물론 궁극적인 목적은 조직 전체의 밥그릇을 보호하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개인적 일탈은 조직의 이름으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이다.
▼전문가집단으로 다시 태어나야 ▼
그러므로 대한민국 국회를 전문가 집단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따라서 도덕성과 자부심으로 충만한 조직문화를 갖출 수만 있다면 문제의 절반은 해결된 것이다. 하지만 국회 교체를 호기로 삼아 당장 제도적으로 검토해 볼 수 있는 것들도 일부 눈에 띈다. 그 하나는 회기 중 불체포와 같은 각종 법률적 특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범죄의 온상’을 제거하면 범죄인이 될 기회도 그만큼 줄어들지 않겠는가. 또한 산하 위원회 가운데 국회윤리특별위원회의 위상과 권한을 맨 꼴찌에서 맨 첫째로 올릴 필요도 있다. 검찰이 덮치기 전에 국회가 먼저 범죄자를 추방하라는 것이다.
부패와 무능의 상징 대한민국 국회가 한강 상류가 아닌 하류에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오늘의 격한 민심은 그것을 멀리 바다로 떠밀어낼 태세다.
전상인 한림대 교수·정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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