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땅과 인간…' 건축에 담긴 꿈과 신화를 찾아…

  • 입력 2003년 12월 26일 17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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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인간/기독교와 인간/임석재 지음/501, 518쪽 각권 3만원 북하우스

33권의 서양 근현대 건축사 시리즈와 8권의 한국 현대 건축사 시리즈가 집필되는 사이에 탄생한 또 다른 5권의 시리즈가 소위 ‘골수 건축사학자’에 의해 소개되었다. 오로지 책을 통해 역사와 철학, 그리고 건축과 씨름하는 천하장사가 있다면 그가 바로 이화여대 건축과의 임석재 교수일 것이다. 임석재 교수의 서양건축사 시리즈 중 그리스 로마건축을 다룬 ‘땅과 인간’, 그리고 비잔틴건축을 다룬 ‘기독교와 인간’이 먼저 세상 나들이에 나섰다.

단순한 역사로서의 건축세계를 넘어 머리끝에서 시작된 건축의 사유가 발끝으로 이어져, 세상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고 더듬어서 건축에 담긴 고유의 시대정신을 발굴해 내는 이 골수 건축사학자의 야심은 인간을 땅과 기독교에만 국한시키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이미 기독교를 통해 하늘에 이르고, 다시 땅을 딛고 하늘을 받치며 사는 인간에게 되돌아온다. 인간과 건축의 관계에 대한 사유와 건축을 통한 인간 정신에 대한 통찰, 이것이 바로 다섯 권의 서양건축사 시리즈를 꿰뚫고 있는 저자의 시선이다.

저자는 땅과 인간, 기독교와 인간, 하늘과 인간, 인간과 인간, 그리고 기술과 인간을 통해 서양건축사의 기원에서 근대에 이르는 과정까지 인간이 건축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 어디에 이르려고 했는지를 설명한다. 어쩌면 좀 더 근본적인 의문인 인간이 무엇을 통해 건축을 이루어냈는지, 그리고 인간이 건축을 통해 무엇을 극복하려고 했는지를 찾아 나선 것처럼 보인다.

건축은 세상을 보는 한 방식이다. 시각 세상을 지배하는 건축이 존재하는 방식은 단순히 현실세계만이 아니다. 우선 건축가의 머릿속에서 창조된 건축이 첫째 범주에 속하는 건축이라면, 현실세계에 지어져 대중의 삶 속에 존재하는 실체로서의 건축이 둘째 범주에 속한다. 또 다른 범주로서 제3의 건축이 있다면 그건 바로 건축사가에 의해 해석되어 재창조되는 건축사로서의 건축이다.

건축과 건축사와의 관계는 어쩌면 콘서트의 현장에서 창조되는 원음과 오디오에 의해 재생되는 녹음된 소리와의 관계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오디오가 녹음된 소리를 단순히 재현하는 도구라기보다는 또 다른 음악세계를 창출하는 영역으로 자리 잡은 것처럼, 건축사 역시 독자가 건축사가의 해석에 의지해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만을 중시하던 ‘가시(可視)의 세계’에서 벗어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포용하는 또 다른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재생의 장치이다.

건축사로서의 건축은 건축물을 설계한 작가의 건축적 상상력에 건축사가의 시대와 사회를 바라보는 역사적 통찰력이 결합된 새로운 유형의 건축이다. 건축사라는 또 다른 프리즘을 통해 본 건축은 눈에 보이는 건축과는 달리 건축 속에 녹아 살아 숨쉬는 영원불멸의 시대적 가치와 정신을 드러낸다. 임석재 교수와 함께 떠나는 서양건축 순례는 건축을 통해 드러난 인간의 꿈과 신화를 찾아 나서는 일이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자면 시대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세계 도처의 건축물에 담겨진 그 시대와 사회의 철학과 가치가 지금 우리 시대의 머리와 마음속에서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건축은 시대의 삶과 문화를 이야기하는 한 방식이다. 건축이 살아온 지난 20세기의 세월을 짊어지고 우리를 살아 숨쉬는 역사 속으로 인도하는 건축사학자의 앞으로의 행보가 대중의 향기 속에서 더욱 성숙되길 기원한다.

이영범 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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