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사교육 효과

  • 입력 2003년 12월 8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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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양반이나 잘사는 사람들은 자식들 교육에 신경을 많이 쓰며 아주 어릴 때부터 선생을 두어 글공부를 시키는데 이것은 이 민족이 매우 중시하는 일입니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글을 읽습니다. 이 어린 소년들이 배움의 기초가 되는 교재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을 보면 정말 놀랄 만합니다.” 17세기 중반 한국에 표류해 온 네덜란드인 헨드리크 하멜이 ‘조선왕국기’에 남긴 기록이다. 이 글을 읽으면 하멜이 제주도 해안에 도착했던 350년 전과 요즘의 교육 현실이 너무도 흡사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한국의 교육열은 해방 이후 입시경쟁을 통해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라 이처럼 오랜 역사적 맥락을 갖고 있는 것이다.

▷교육이 사교육으로부터 출발했다는 것은 상식이다. 서양에서는 지배계층과 부자들이 집으로 교사를 초빙해 자식들을 가르쳤다. 산업사회 이후 정식 학교가 등장한 것은 국가 차원의 인력 수급과 훈련을 위해 대중 교육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교육이 자리를 잡으면서 사교육은 차츰 축소됐다. 그렇다면 최근 각국에서 사교육 수요가 오히려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우리처럼 입시와 관련된 것이다. ‘공교육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서도 명문대 합격을 위한 사교육은 늘어나는 추세다.

▷두 번째 이유는 급변하는 ‘생존 환경’이다. 사회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변화에 제때 적응 못하는 거대한 몸집의 공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자기 계발을 하는 쪽을 택하고 있다. 그 편이 훨씬 빠르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영어 열풍이 대표적인 예다. 자기 발전을 위한 사교육은 ‘입시’ 사교육과 구별되어야 한다.

▷교육당국이 올해 말까지 강력한 사교육비 대책을 내놓겠다고 공언한 가운데 사교육비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그 중 하나가 사교육의 효과가 과연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논쟁이다. 일부 학자들 주장대로 사교육은 별 효과가 없을 수도 있고 입시를 앞둔 학부모의 불안한 심리가 필요 이상으로 사교육비 지출을 늘릴 수도 있다. 그러나 학부모의 불안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교육당국과 공교육의 신뢰성 저하 탓이다. 정부가 이를 회복하려 하지 않고 사교육 전체를 타도 대상으로 설정하는 것은 책임을 엉뚱한 곳에 미루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교육 대책은 사교육을 무조건 억제하는 ‘마이너스’적 접근법이 아니라 한국의 남다른 교육열을 긍정적인 국가에너지로 살려나가는 쪽으로 나가야 한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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